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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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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신학 (I)

2010.08.08 01:08:00


(지난 27일 공지해 드린대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으로 저명한 원로 신학자이신 김종혁 박사의 강의 및 논문을 게재할 수 있게 된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김박사님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과 세계적 석학의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언급하실 가장 적합한 분이라 사료됩니다. 박사님의 논문과 강의를 통하여 미가608 메시지의 종합주제 "정치개혁과 종교개혁"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논문은 김종혁 박사 홈폐이지 www.livingwater.co.kr 에서도 열람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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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신학(I)
(J. Dillenberger and C. Welch. Protestant Christianity. Charles Scribner"s Sons. pp.302)
16세기에 서방교회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은 알려진 대로는 14세기 영국의 Lollards와 15세기 보헤미아의 후수파의 교회들의 당시 교회에 대한 저항 운동까지 포함을 시킬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는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뷔텐베르크의 쉴로스교회 문에 제시한 95개조의 교회의 그릇된 점들에 대한 저항을 하는 논제를 제시한 이후, 전개 된 가톨릭교회와 개혁파 사이의 논쟁과 그 결과로 형성된 프로테스탄트교회 수립 운동을 종교개혁이라 부른다. 개신교 즉 Protestantism이라는 말은 1529년 스파이어 종교회의에서 개혁을 찬성하는 대표들이 모여서 로마가톨릭의 성서의 뜻에 그릇된 관행에 대해서 항의(Protest)를 한 일들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이 말은 그 후 기독교의 전통을 공유하는 로마가톨릭교와 동방 정교를 제외한 모든 교단에 적용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이 된 개신교는 그 후 다섯(5) 개의 종파들로 나눠지면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

 

1). 그 첫 번째는 루터교파들인데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국가와 연결되어 있는 루터파의 교회들이다.
2). 두 번째 개혁파(Reformed) 또는 칼빈 파로 되어 있는데 독일 개혁교회, 네덜란드 개혁교회 와 장로교단 등이 이에 속한다.
3). 세 번째 개신교는 재세례파 종파들이다. 메노파 교인들과 후터파 교인들과 형제회가 이에 속하고 케이커들과 침례교파는 다소 먼 친척에 해당이 된다.
4). 개신교의 네 번째 교단은 영국 국교회(Anglican 혹은 성공회)로 구성이 되어있다.
5). 개신교의 마지막 교파는 주로 기존의 교회에 협력을 하지 않는 교파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들 교회들은 자유교회, 비국교파, 조합교회 혹은 분리주의자로 부르고 있다. 이들 교회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도들이 청교도들이다. 그리고 퀘이커교, 침례교, 조합교회 혹은 회중교회가 이 교단에 속한다.

 

그러나 이 처럼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개신교신학의 사상들을 공유하고 있다. 개신교 신학사상에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신학적 사상은 예언자적 혹은 창조적인 비판과 저항에 대한 사상들이다. 이 신학적 사상은 주로 하나님의 주권 성 혹은 통치권을 시인 하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사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특성이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계시의 역동적인 특성과, 교회의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 말씀에 있다는 것, 죄와 죄 사함에 대한 이해, 계속적 개혁에 대한 원리와 그리고 개혁을 가능케 하는 실제적인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모두가 이 개혁의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혁의 원리는 주로 비판과 저항의 개념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실존하는 존재들의 모든 제한성과 일그러진 모습을 초월하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이 원리는 궁극성과 절대성에 대한 모든 인간들의 주장에 대해서 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로마가톨릭교의 주장들에 대해서 개신교는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로마가톨릭교는 정확히 그 자체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하며 교회는 개혁이 될 수 없고 그리고 신앙과 도덕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데에는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고 그리고 보호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일에 대해서 비록 그것이 종교적인 경우에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사회적이나 혹은 정치적이든 간에 개신교는 당연히 저항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적인 기관들과 모든 신경들과 모든 종류의 예배의 형식들에 있어서도 인간의 존재와 그들의 상황은 언제나 제한과 일그러짐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교적인 방식이나 제도에 있어서도 새롭게 이해가 된 진리에 의해서 비판을 받게 되는 일을 피해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궁극적인 이해가 된다고 해도 그 것은 역사적으로 조건이 지워지고 죄인 된 인간들에 의해서 이뤄진 인류가 한 이해로서 그들의 전망이 노출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비판의 원리는 단순히 로마가톨릭교단에 대한 비판만은 아니다. 개신교의 개혁의 원리가 있는 곳에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일이 되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 일은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개신교는 이러한 의미에서 자체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 저항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신교의 발전에 대해서 때로는 그 자체의 최종성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주장을 하는 경우에도 개신교의 원리에 의해서 계속적인 저항을 받아 가면서 계속적인 개혁과 거듭남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신교 또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의해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그 원리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그 자체가 내적으로 새롭게 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개혁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서있다는 것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개신교 교회의 강점이 되기도 하고 위험성이기도 하다. 개신교가 강하다는 것은 중생의 가능성이 부여되어서 부활의 소망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하다는 것은 그러한 과정으로 인해 그 자체에 불안과 혼란을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이 개혁의 원리는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혹은 저항을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원리에 포함이 된 비판은 그 특성으로 볼 때 예언자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원리에서 발견되는 저항의 과정은 개신교가 복음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로부터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와 복음의 역동적인 특성으로부터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새로운 역사의 현실들 가운데에서 인간들을 만나고 계시다는 것을 시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에 대해서 교회가 증언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특정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만나고 계시다는 것을 시인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전해진 믿음에 대한 지식을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복음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증언은 특정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응답을 하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대화로부터 비롯된다. 복음은 인간이 처한 곳에 지향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그것이 전해지는 세계의 상황을 통해서 심판을 하며 계속해서 다시 다시 해석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언제나 동일하나 그 복음이 나타나는 형태들은 그것이 전해지는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개신교의 운동은 단일한 형태로 그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낼 수가 없게 된다. 개신교는 그 자체의 개혁의 원리에 의해서 언제나 자체를 초월하는 실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되어 있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증언에는 어떤 중심이 되는 요소들이 하나의 규범으로 되어 있어서 그 것이 궁극적으로 고정이 되는 것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교회의 제도나 그 어떤 제도도 개신교가 증언을 하는 것을 완벽하게 실현을 시킬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신교는 언제나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더 바르게 시인을 하려는 영적태도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원리는 낡은 방식들과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인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편파적이고 비뚤어진 상태에 대해서 저항하는 일만은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그 자체가 새롭고 창조적인 형태를 나타냄으로써 그 일과 관계가 없는 여러 가지 허위와 현혹을 하는 방식들을 거부하는 일을 하게 된다. 개신교의 원리는 그릇된 일을 비판하고 그리고 자기 자체를 비판을 하는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은 기독교의 증언이 어떤 형태로든 그 결과가 고정이 되어서 변화를 피하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을 하도록 한다.

 

개신교 신학사상의 두 번째로 꼽힐 수 있는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권 혹은 주권에 대한 사상이다. 종교나 문화의 제도에서 무오성과 절대성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그 주권성의 이름 아래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한정되고 역사적인 존재와 제도의 신격화 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은 이미 세워진 방식과 제도의 밖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분의 자유를 시인하는 일로부터 비롯되는 새롭고 창조적인 형태를 시인을 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리를 새롭게 알리실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개혁가들의 글들에서 특히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sola gratia)으로라는 주제에서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오로지 은혜에 의해서 구원이 가능하다는 교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다는 것은 부적절하고 왜곡된 생각이라는 것을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의 전적으로 우선하다는 것을 증언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 그 분께 지향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앞에서 그 일을 추진을 하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구하고 믿음과 순종을 하려는 일들은 모두 인간을 은혜롭게 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응답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에 대한 교리는 개신교신학의 하나의 큰 부분을 점유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루터의 신학을 해석하는 학자의 말로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말로 요약이 된다는 것이다.

-신학박사 김종혁

<관련 미가608 메시지>
http://micah608.com/10-5-4-reformation-call.htm
http://micah608.com/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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