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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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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떻게 스트레스로부터 자유하게 될 수 있을까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예수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외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나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五)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十)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 하지 말라.” (마태복음5장 38-42절)

 

   “스트레스”라는 말은 여러 분야에서 사용이 되는 말입니다. 강의나 연설에서는 특별히 강조되는 사항이나 말에 대해서 강세하는 하는 것을 뜻하고, 물리학이나 기계공학 분야에서는 응력(應力)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일상의 삶의 상황에서 받는 긴장을 말합니다.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료, 암, 심장질환 등과 같은 성인병은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그 병의 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와 같이 복합적으로 되어 있는 삶의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면 우리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하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유대 나라에 계실 때 그 나라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강점이 되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마치 일제의 강점 하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있었듯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민족 전체가 가난하며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음을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예수께서 같은 유대민족이 그러한 수난의 생활환경에서 받는 고통과 긴장을 받고 있는 유대인 동족들에게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들의 생활환경은 마치 우리가 일제 때에 부역이나 징용으로 겪고 있는 흡사하게 생각이 되어 집니다. 본문의 41절의 말씀으로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너는) 그 사람과 함께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신 말씀이 그러한 상황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군병들이 유대국을 점령을 하고 그들에게 이러한 육체적인 부역을 자주 했었을 것이고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러한 요구를 거절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역은 군인들의 무거운 장비들과 식량 등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로마군병을 따라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는 언제나 중한 노동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짐들이 무거울지라도 그 일이 개인의 사업이나 가정에 관련이 된 것이라면 때로는 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상황에서도, 그 일에 대한 고통은 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서는 그와 같은 힘든 일을 통해서 일종의 성취감까지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볼 때 모든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비록 그 일이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그 일로부터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 즉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그 일의 쉽고 어려움을 떠나서 그 일 자체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한다면 스트레스는 자기 보호의 일이 위협을 받을 경우에는 우리는 긴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론 모든 생물들도 자신들이 위험에 처할 때에는 자기 보호의 행동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방어하려는 생각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침해 될 때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때에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해자에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보복이 다른 보복을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다른 보복을 하게 되어서 결국 끝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끝내는 자체까지 완전히 소멸이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1장24-25절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의 말씀들을 상기시키면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본문성경의 39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모든 인간들이 지금까지 갖고 있던 그 본능적인 자기 보호의 추세와는 전적으로 다른 내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그 뿌리 깊은 본능적이며 그리고 극히 자연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떠날 것을 권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왼편 뺨을 치면 오른편 뺨도 돌려대고,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것을 강제로 5 리를 가자고 하면 10 리를 가라고 하는 어떤 특정한 처신에 대해서 지시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자기보호에 대한 삶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 자체를 훨씬 더 넘어서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스트레스를 주는 일들로부터 결코 자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이 어느 정도나 달라져야 할 것인가는 예컨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강제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를 동행”할 수 있게 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을 하지 않게 될”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는 사막지역입니다. 사막지역은 낮에는 말할 수 없이 더워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갑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겉옷”이라함은 단순히 모든 옷들 위에 입는 옷으로 그치지 않고 밤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겉옷을 덮고 자는 데에 필요한 것이 겉옷입니다. 그리하여 겉옷을 쉽게 내어주는 일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명기 24:13절에는 겉옷에 대한 율법의 말씀이 있습니다. 간혹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겉옷을 전당 물로 맡기고 돈을 대출해 가는 일이 있어도 전당포의 주인은 “해 질 때에 그 전당 물(겉옷에 한정해서)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의 공의로움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에 예수님의 말씀은 일상의 삶에서는 쉽게 지켜질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의 가치관과 생활의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생각을 하도록 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오던 삶에 대한 생각의 권역을 “그 정도”에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서 “ 이상의 ”까지도 넓혀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과 활동의 범위에 준한 “그 정도”의 범위로 한정을 시키고 그 범위 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 계획을 세우고 그 일이 해결이 안 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질이 급한 우리 민족은 어떤 일에 의해서 긴장이 싸이게 되면 느긋하게 참지를 못하고 “열”을 받게 됩니다. 그 때부터는 자신이 받은 그 열에 의해서 불을 지르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동차나 심하면 일생동안 모아서 준비한 집이나 파출소나 처갓집의 기물이나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는 행동을 하고 극단의 경우에는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서 소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적절히 통제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처럼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님께서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생각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확실한 현실에서 비롯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일을 넘어서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의 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이 “그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서 그 이상의 권역까지 확대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생각과 가치관만이 그 가공할 정도의 파괴력을 무력하게 해서 우리가 자유하게 될 수가 있게 된다고 하십니다.

 

   인간의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요? 바울 선생이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일을 한다고 하십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는 “모든 것”이란 완성의 단계를 행해 가는 모든 과정들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든 과정들이 함께해서 소망을 이루는 일을 완성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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