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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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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조물들에게 생명이 주어진 것은 웨스트민스터 소(小) 요리문답 제 1항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그리고 그를 영원히 즐기도록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는 이사야서 40장 4절-5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을 하고 있다.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지적인 존재들을 창조를 하시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시간, 역사, 육체와 도덕의 활동들을 통해서 그 영광을 반영을 하도록 해서 자신이 영광을 받으신다(Ambrose). 창조 사역의 완수는 확실히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인간의 가치가 감소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자만과 쾌락과 기타의 일들에 의해서 자기중심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도록 그들을 창조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적인 존재들을 창조하심으로써 자신에게 특수하게 찬양을 드리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시간과, 역사와, 물상의 세계와 도덕적인 행동들에게 반영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만과 혹은 단순히 쾌락이나 혹은 자기중심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행복과 피조물들에게 허용이 된 여러 가지 선함에 비례하는 질서와 그리고 창조주의 목적에 부합하는 관계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주의 창조의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도록 하신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이 삶이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창조의 세계 안에 행복이 풍성하도록 함에 있었다(Catherine of Siena). 피조물들이 말과 기억과 의지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다면 창조주를 찬양하는 일은 크게 증대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적인 존재들을 창조하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분명하게 세계 역사 내에서 반영을 하도록 해서 하나님 자신은 크게 영광을 받고 계신다(Lactantius).

 

   창조론과 관련이 되어서 고대와 중세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우주창조의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해설을 하고 있다. 특히 시간의 기원을 설명을 하는 데에서 시간을 우주의 기원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창조와 함께 시간이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는 창조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Augustine).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있는 시간의 틀 속에 만물을 창조 하셨다는 생각과는 일치 하지 않는다. 만물은 시간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심과 동시에 시간을 또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은 (어떤) 시간적인 측면이나 또는 시간의 한 부분에 관련이 되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Gregory Nazianzen). 같은 맥락에서 시간은 창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Augustine).

 

   하나님은 역사 내에서 창조의 일을 하셨지만, 그러나 그 분은 영원히 역사를 초월해서 계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간은 한정이 된 성격을 지닌 것으로써 측정이 가능하고 그리고 세부적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영원은 한정이 된 것이 아니며 측정이 가능하지 않고 또한 부분들로 나눠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Augustine).

 

   비록 영원은 시간은 구분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우주는 시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영원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주의 존재 이전과 이후에는 시간의 개념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는 영원함에 의해서 가려져 있고 또한 모든 시간들도 영원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영원이란 연대적으로 앞서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전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 이전에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없었기 때문에 시간 이전의 시간이란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 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Augustine).

 

   요한복음서 17장5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에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기억을 한다. “아버지,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그러나 이 말씀은 시간 이전에 어떤 시간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시간 자체는 영원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예수님에 의해서 영원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이 통치를 하실 수 있는 피조물들과 함께 하셨다는 뜻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시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 되며 그리고 그 말씀에 포함이 되어 있는 뜻은 시간 자체가 창조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Augustine).

 

   영원은 세계가 창조되었을 때에 시작이 된 것이 아니다. 영원이 시간을 품고 있다는 것은 영원은 시간의 바탕과 가능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John of Damascus). 영원은 또한 시간의 모든 순간들,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들에 포함이 되어 있다.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나타나는 지금을 영원으로 보아야 한다(Kierkegaard). 창조된 질서가 시작이 없다고 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시작은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고 해도 그 것에 대한 가정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 자에 대한 가설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날 자에 대해서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영원은 시간 안에서 언제나 쉬는 일이 없이 계속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Tertullian).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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