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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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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한복음 15장 4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이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 을 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 혹은 분부의 형식으로 된 말씀입니다. 모든 명령의 말들은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미래지향적인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개인에게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일 혹은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명령의 말들은 미래의 권역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을 해 본 일이 없는 일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여간 해서는 확신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일을 앞에 두고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신 혹은 믿음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는 그 일 자체보다도 그 일을 하라고 명령을 하신 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일에 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모체가 되는 유대교는 미래에 있을 일들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그 많은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들은 당시의 상황으로는 미래에 있을 일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시대에 와서 예수님과 그 분의 제자들을 통해서 전달이 된 말씀들 또한 장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 12장1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형적인 명령의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의 말씀은 아브라함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일은 수행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보통 사람으로는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말씀은 그 자체도 힘든 일이기도 하려니와 그 말씀에는 아직도 아브라함이 가야 할 목적지 자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편집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8절에서 그 오래전에 수행한 아브라함의 일을 회상을 하고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라고 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구비하는 개인을 찾는 일은 종교 혹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볼 수가 있는 일들입니다. 개인은 우선 구원받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종교들의 경우와는 달리, 기독교는 개인이 구원을 받는 일에서 그 개인의 현재의 삶의 됨됨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즉 지금 까지 내가 살아온 개인의 삶의 옳고 그름이 내가 받을 구원의 어떠한 선결의 조건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통해서 자신이 계획한 일을 실현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뿐이고 그러할 때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에 상응하는 응답을 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9절에는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 아브라함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자신의 그 의에 의해서 모든 일을 옳게 혹은 공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개인의 자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그 뜻을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 개인을 의롭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더 확대해 본다면 우리가 의로우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써, 혹은 의로우신 예수께서 우리들의 내면 혹은 가운데에 거하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5절에서 바울 선생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즉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 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씀이나 혹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혹은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뜻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두 번째 성경말씀은 요한계시록 3장2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여기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홀만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손잡이가 없는 닫혀져 있는 하얀 대문 밖에서 그 문을 두드리시며 응답이 있기를 바라시며 서서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그림입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신령한 구원의 계획은 아깝게도 실현이 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문을 여는 일이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의 사례를 보아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그 일은 우리가 홀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문을 열면 …”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 내가 그에게 들어가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을 하기 위해서 문을 열어야 하는 일은 개인의 따라 그 종류들이 다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은 우리의 내면의 문들로 우리의 생각의 문들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있는 문들에 대한 예들을 들어 본다면,

 

1). 어떤 경우에는 배운 학문이 강하게 자리를 하고 있어서 그 문이 좀처럼 열려지지 않고 있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2), 또 어떤 경우에는 크고 작은 사회의 기관과 기업체에서 오랜시간의 공무의 경험을 통해서 쌓은 문이 쉽게 열려지지 않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3). 또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께서도 지적하신 일입니다만 자신이 쌓은 재물에 의해 마음의 문이 쉽게 열려지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4). 또 어떤 경우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몇 번의 거듭한 실패로 마음의 문이 쉽 게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5). 또 어떤 경우에는, 나이가 많다고 하면서 그 많은 경험에 의해서 다져진 마 생각의 문들이 쉽게 열리지 않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6). 타락한 인간들이 예외 없이 갖고 있는 자기중심의 생각에 의해서 괘씸한 생 각이 마음의 문을 쉽게 열리지를 못하게 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7). 또 어떤 경우에는 우연히 자신의 성벽이 하나가 원칙이 되면서 그 후부터는 그것이 하나의 신조처럼 세워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컨대 누 가 언제부터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성격이 대쪽 같다”는 말 로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완고 한 성품이 세워진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개인들의 마음의 문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굳게 닫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문들을 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에서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히 여기고 간직했던 것들이 소중해도 말입니다. 바울 선생은 빌3:8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10절에서 예수님은 이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자신은 “…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한복음서 13장34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새 계명이 다름 아니라 사랑의 계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도 예수님을 깊게 사랑함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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