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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Profile 격려서신

 

 

53). 창조와 역사의 궁극적 완성을 위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비전과 활동들의 아름다움과 적절하심은 오늘의 인류가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 모습들과 비교를 해 본다면 우리는 너무나 크게 대조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인간은 개인의 그 자율적인 노력으로 세우고자 하는 일들로부터 자신의 행복과 자본을 소유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도 자기의 권세를 타인에게 발휘해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54).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협동심과, 우정과, 공동의 복리 증진을 배양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를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서 진정한 행복을 소비품을 소모하는 일과 혼동을 하고, 참된 자유와 소유의 많음과, 그리고 진정한 자아와 고립적인 존재를 혼동을 하고 있다.

 

55). 그러나 현대인들의 행복관이 아무리 유혹적인 일이 될지라도, 그들의 많은 소유와 소모를 추구하는 일들이 인간이 마음의 깊은 곳으로부터 염원하는 것은 채울 수는 없다. 인간은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도록 되어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깊은 곳에서 염원하는 이러한 것들은 결코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으로는 이룩할 수가 없다.

 

56). 현대인들 중에는 그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군사력의 증대를 통해서 유토피아를 추구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러한 생각은 본질적으로 북한과 공산주의 정체를 추종하는 국가들로 혁명적 투쟁과 폭력을 통해서 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기는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한 혁명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자유가 속박을, 공의가 자본주의 착취를, 평화가 각종의 계급적 투쟁을 대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57). 지금까지 논한 세속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현상들을 비교한다면, 전자는 개인의 기업의 향상을 통해서 꿈을 이루려는 서구사회의 꿈들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이루려는 꿈들로 나눠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 후자에 속하는 나라들은 혁명을 통해서 이상향을 향한 꿈들은 때로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과 국민의 희생을 무자비 하리만큼 강요하는 것을 보게 된다.

 

58). 혁명을 통한 유토피아는 그 목적수단보다 우위를 점유해서는 안 된다. 즉 오늘의 삶보다 미래에 있을 삶에 그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 될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된 삶의 상황에서는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일은 언제나 오늘의 희생을 통해서 미래의 삶이 더 자유하고, 공정하고, 동등하게 살 수 있다고 믿으면서 오늘의 희생을 정당하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북한의 삶의 실정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나 실제로 달성하는 일이 십지 않은가를 보게 된다.

 

59). 기독교의 복음에도 혁명적 요소가 있다. 기독교의 복음 또한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사회와 경제적 삶에 대해 변화를 추구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해 많은 사람을 가난하고 굶주리게 하는 세계의 구조에 대해서 항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고 포괄적인 인간의 공동체는 보복적인 정신이나 무차별적 폭력을 통해 세울 수는 없다.

 

60). 그러나 개인의 능력을 통한 이상향을 구축하려 한다든가, 폭력을 통한 집단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그 저변에 언제나 파괴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적 경제발전의 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에도 공중의 복지를 희생할 정도로 인간의 삶을 비인간화하는 일들을 감행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 3 세계의 이른바 혁명들 또한 추상적인 이념과 계급 없는 사회의 이념 하에서 인간 자체를 희생시키는 일을 해서 끝내는 인간의 삶 자체를 인간적인 삶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61).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순수한 인간적인 이해와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부르고 있는 미래에 대해서 이해를 하도록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시작하는 미래를 향해서 기대하고, 활동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노력을 하도록 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공동체의 형태로 계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서로 스며드는(상호 침투하는 interpenetraning) 사랑으로 결속이 되어진 단일체로 계신다는 것이다.

 

62). 삼위일체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삶의 상황에는 서로 다른 점들이 배타적이거나 소외의 조건이 되지를 않고 오히려 축하를 해야 하는 조건이 되어서 사랑이 지배적인 공동체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지배를 위한 권력이 주동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로부터 주며 받는 친교의 상황에 있다. 현대 신학자 Moltmann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존재를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의 삶과 능력을 나누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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