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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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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성령에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재하시는 일은 그 과정 자체가 공동체적 방식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한다면 성령님이 교회 공동체의 회중에로 보내심을 받는 데에는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이 함께 그 일을 추진하셔서 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교회공동체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각자에게 적합한 성령의 선물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교회 공동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공동체로 활동을 하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 특정한 교회 공동체에 오시어서 그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이 각기 자신들의 기능들이 완성이 되도록 하시는 일을 하신다. 우선 성령께서 교회공동체에 임하시게 되면 그 교회공동체에 속한 교우들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에게 적합한 선물들을 그들에게 주신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이 된 말씀들을 보면 성령에 의해서 전달이 되는 선물들에 대해서 말씀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에 의해서 교우들에게 주어지는 선물들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열거를 하고 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을 고치는 은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 “예언하는 은사,” “방언을 말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등의 여러 가지 좋고 필요한 일들을 성령께서는 선물을 교우들에게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공동체의 본래의 사명이 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들을 잘 감당을 하도록 도와주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끝으로 십자가의 신학은 성령님의 활동에 의해서 얻게 되는 중요한 승리, 고질적인 병의 치유들, 우리들이 감사를 드려야 할 사회에서 얻게 되는 성공적인 일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에 의해서 해결이 된다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즉 기독교의 귀의(기독교를 깊이 믿고 의지함)한 신앙인들이 모든 종류의 질병들로부터 언제나 성령에 의해서 치유가 된다는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는 대조적으로 십자가의 신학은 종종 역경과 비극적인 상황가운데에 성령께서 줄기차게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게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고찰을 한 십자가신학의 통찰에 의하면 우리에게 분명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성령에 대한 승리 주의적 신앙관의 잘 못 된 점은, 신약성경이 그처럼 중요하게 강조를 하고 있는 믿음이 지나쳐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령의 활동은 하나의 보증 혹은 약속과 같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예컨대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장22절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리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신약성경 에베소서 1장14절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일 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 주시는 보증의 약속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라고 한다. 신약성서에는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말씀들은 반드시 이행이 될 것임을 담보를 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오심과 그리고 오신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모든 선물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그들을 위해서 쌓아두신 많은 것들에 대한 하나의 전조(미리 맛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소망에 대한 신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말씀들이 성경 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그 선하고 필요한 일들이 미래에 반드시 이행이 될 것임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하신 약속을 이행을 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을 한 말씀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중요한 일로서 성령님의 오심과 그리고 오신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받은 성령님의 선물들이 비록 그들에게는 그 일부분에 해당되고 있으나 그러나 그 선물들은 장차 크게 받게 될 많은 선물들의 한 부분에 불과 하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교회공동체의 회원들에게 온전하게 실현이 될 일들에 대한 약속과 보증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승리 주의적 신앙의 측면에서 이해가 되고 있는 소망의 신학은 미래에 성령님의 오심과 활동을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지 않고, 자신들을 통해서 성령의 활동이 이룩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내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환호로 성령의 오심과 활동을 믿는 개인은 우선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려는 생각을 하면서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일들 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하게 될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해서 개별화 된 생각을 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각을 하지를 않는다면 분명히 거기에는 투쟁을 하는 교회의 일들은 뒤로 하고 믿음의 모든 일들을 자신을 위해서 성취하는 교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의 믿음에 의하면 지금의 성령님의 활동들은 미래에 있을 온전한 행복, 성공, 승리에 대한 약속과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보증이 되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투쟁하는 교회로 용기 있게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하도록 한다.

 

성령님은 오늘의 교회와 그리고 오늘의 세계를 위해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임재하시지 않고는 교회는 능력이 없게 되고 시련을 직면했을 때에 용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만이 오로지 교우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할 것이다. 성령님의 오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때로는 우리가 역경에 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낄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재하시는 일은 그 과정 자체가 공동체적 방식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한다면 성령님이 교회 공동체의 회중에로 보내심을 받는 데에는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이 함께 그 일을 추진하셔서 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교회공동체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각자에게 적합한 성령의 선물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교회 공동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공동체로 활동을 하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 특정한 교회 공동체에 오시어서 그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이 각기 자신들의 기능들이 완성이 되도록 하시는 일을 하신다. 우선 성령께서 교회공동체에 임하시게 되면 그 교회공동체에 속한 교우들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에게 적합한 선물들을 그들에게 주신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이 된 말씀들을 보면 성령에 의해서 전달이 되는 선물들에 대해서 말씀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에 의해서 교우들에게 주어지는 선물들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열거를 하고 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을 고치는 은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 “예언하는 은사,” “방언을 말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등의 여러 가지 좋고 필요한 일들을 성령께서는 선물을 교우들에게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공동체의 본래의 사명이 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들을 잘 감당을 하도록 도와주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끝으로 십자가의 신학은 성령님의 활동에 의해서 얻게 되는 중요한 승리, 고질적인 병의 치유들, 우리들이 감사를 드려야 할 사회에서 얻게 되는 성공적인 일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에 의해서 해결이 된다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즉 기독교의 귀의(기독교를 깊이 믿고 의지함)한 신앙인들이 모든 종류의 질병들로부터 언제나 성령에 의해서 치유가 된다는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는 대조적으로 십자가의 신학은 종종 역경과 비극적인 상황가운데에 성령께서 줄기차게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게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고찰을 한 십자가신학의 통찰에 의하면 우리에게 분명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성령에 대한 승리 주의적 신앙관의 잘 못 된 점은, 신약성경이 그처럼 중요하게 강조를 하고 있는 믿음이 지나쳐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령의 활동은 하나의 보증 혹은 약속과 같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예컨대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장22절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리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신약성경 에베소서 1장14절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일 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 주시는 보증의 약속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라고 한다. 신약성서에는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말씀들은 반드시 이행이 될 것임을 담보를 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오심과 그리고 오신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모든 선물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그들을 위해서 쌓아두신 많은 것들에 대한 하나의 전조(미리 맛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소망에 대한 신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말씀들이 성경 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신 그 선하고 필요한 일들이 미래에 반드시 이행이 될 것임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하신 약속을 이행을 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을 한 말씀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중요한 일로서 성령님의 오심과 그리고 오신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받은 성령님의 선물들이 비록 그들에게는 그 일부분에 해당되고 있으나 그러나 그 선물들은 장차 크게 받게 될 많은 선물들의 한 부분에 불과 하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교회공동체의 회원들에게 온전하게 실현이 될 일들에 대한 약속과 보증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승리 주의적 신앙의 측면에서 이해가 되고 있는 소망의 신학은 미래에 성령님의 오심과 활동을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지 않고, 자신들을 통해서 성령의 활동이 이룩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내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환호로 성령의 오심과 활동을 믿는 개인은 우선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려는 생각을 하면서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일들 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하게 될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해서 개별화 된 생각을 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각을 하지를 않는다면 분명히 거기에는 투쟁을 하는 교회의 일들은 뒤로 하고 믿음의 모든 일들을 자신을 위해서 성취하는 교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의 믿음에 의하면 지금의 성령님의 활동들은 미래에 있을 온전한 행복, 성공, 승리에 대한 약속과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보증이 되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투쟁하는 교회로 용기 있게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하도록 한다.

 

성령님은 오늘의 교회와 그리고 오늘의 세계를 위해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임재하시지 않고는 교회는 능력이 없게 되고 시련을 직면했을 때에 용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만이 오로지 교우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할 것이다. 성령님의 오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때로는 우리가 역경에 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낄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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