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힐링센터 /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Profile 격려서신

우리가 위에서 본대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10절에서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역설적 진리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역설은 성육신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성육신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유에 누어있는 하나의 아기로 오셨으나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가 되시었다. 마가복음서 8장35절에는 모든 역설들 중에서 가장 전형이 되는 역설적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현명하고 힘이 있고 고상한 성품의 사람들을 발견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 하나님께서는,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라고 한다(고린도 전서 1장26-29절).

 

갈라디아서 5장22절 이하에는 성령께서 교회공동체의 회원들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에게 “…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열매들을 맺게 하신다고 한다. 그런대 이들 말씀들을 잘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앞에서 고찰한 바울의 역설적 표현의 말씀들을 잘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 자신이 빌립보서 4장7절에서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미루어 생각함)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이 말하는 역설적 이해를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리하여 그러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불신자들이 하고 있는 이해의 방식으로는 그 진리를 결코 이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평화는 세상이 찾고 있는 것과 같은 평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의 생애에서 있었던 일들, 예컨대 옥에 갇히는 일들, 매를 맞는 일들 등은 세상의 상황으로는 결코 평화스러운 일들이 아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역설의 증언으로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 에는 기묘한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고통들이 사라졌기 때문도 아니요, 평화를 거부하는 모든 여건들은 그대로 있는 세상이나 성령을 통해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기쁨 또한 세상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10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을 할 것은 우리는 흔히 기쁨을 행복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흔한 행복의 조건은 모든 종류의 고통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순수한 기쁨의 삶의 상황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적지 않게 경험을 할 수 있는 슬픔과 행복이 동시에 함께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할 것인가? 그러나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기쁨은 우리의 삶이 고통이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상황에는 기쁨도 있지만 고민과 비극의 시간에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가끔 경험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생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역설적이지만 참된 기쁨에 차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며 기쁨에 차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바울은 이러한 근원적인 기쁨에 대해서 로마서 8장38절-3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 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때때로 하는 잘못은 다름이 아니라 쉽게 이해되는 논리로 기쁨과 평화에 대해서 약속의 말을 해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체험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각기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도록 말씀을 하신 것을 미루어 볼 때에 그들의 삶이 계속해서 행복한 삶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또 다시 우리는 인간의 모든 지각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성경의 그 역설적인 평화와 기쁨에 대해서 이해를 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십자가의 신학의 맥락에서 성령에 대한 이해를 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께서 육신이 되시어서 세상에 오신 것과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가 살며 호흡을 하는 물상의 세계 내에서 그리고 그 세계를 통해서 활동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령님 자신과 그리고 그 분이 우리들에게 보내신 성령의 선물들도 은혜로 보내신 것들이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로는 전혀 교만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세 번째는 성령에 관련이 된 모든 일들은 언제나 교회공동체와 관련이 되어서 일들이 진행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7)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6)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5)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4)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3)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2)

하나님의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1) [1]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完)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6)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5)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4)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3)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2)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1) [1]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0)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9)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되는 일 [1]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8)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7)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6)

대전 유성구 관평동 892번지   Tel : 042-935-3608, 010-4611-1608   E-mail : micah6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