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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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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임재하신 상황을 그 어떤 굉장하고, 비범하고, 황홀한 상황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과 그리고 그 분의 온전하신 임재에 대해서 충분할 정도로 느끼지를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 …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그 개인의 생애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은 그 일 자체가 이미 그 개인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신 증거가 된다고 믿어도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는, 만약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면, 그 일 자체가 이미 그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신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과 관련이 된 성경의 말씀을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장3절을 보면 “…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자세로 베푼 일들, 예컨대 병자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대접을 한다든가, 낙담을 해서 절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용기를 주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든가, 외로운 삶에 처한 사람을 방문을 하는 등의 일들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두 성령께서 함께 하는 일들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과의 관련이 된 일들을 어떤 굉장하고, 비범하고, 무아경의 상태와 동일시하는 경우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과 그분의 임재에 대한 다양한 일상의 체험들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을 하기를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우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성령이 많이 임한 것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척도로 볼 때에 낮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을 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일종의 죄인들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들은 아직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신 어떤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우리가 앞에서 생각해 본대로 그 승리 주의적 생각의 범주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승리 주의적 생각은 본질적으로 자기 우월성에 대한 생각들이 황홀하고 굉장한 성령의 임재의 현상들을 선호하고 있고 그리고 그들 선물들은 모두 “성령에 의해서 충만하게” 임한 결과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십자가의 신학은 이러한 승리 주의적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에 성령의 활동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성령의 활동들은 모두가 다 선물들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자만심에 대해서 이렇게 강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컨대 고린도전서 4장7절에서 바울은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한 때 프린스턴의 신약 성경 교수였던 퀘니그(John Koenig)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데에서 은혜에 대한 헬라어의 선물들이라는 개념은 신약성경의 독특한 표현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다. 성령의 선물들이라는 개념은 은혜로 특히 오로지 은혜만이라는 개념으로 묘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구원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얻게 된다든가 혹은 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바울은 그 자랑하는 고린도교회의 교우들에게 또 다시 강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린도전서 12장4절에서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 십니다”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같은 양으로 결합이 된 성령의 선물들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어떤 사람은 성령을 더 받고 다른 사람은 덜 받는 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성령의 선물들에 대해서 다음의 아홉 가지 서로 다른 기능들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장8절 이하에서 바울은 “(1)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선물들로서) 주시고, (2)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3)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4)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5)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6)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7)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8)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9)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라고 해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강조하기를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진 은사들은 그 종류와 기능에 있어서 다양해도 그들 선물들이 개인에게 주어진 목적은 언제나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언제나 그 상황에서) 유익하게 (활용이 되도록)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아.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성령의 선물들이 활용이 되어 질 때에는 그들 기능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중복이 되어서 기능이 낭비가 되거나, 또는 같은 기능들이 경쟁을 하게 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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