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힐링센터 /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Profile 격려서신

 

우리가 신약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실로 많은 일들이 성령에 의한 선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의 무제한 적인 선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도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과 그리고 그 개인의 몸에 “가시가 있는” 현상까지도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선물로 보고 있는가 하면, 더 광범하게는 역경과 박해를 두렴 없이 직면하는 태도들 또한 성령의 선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고대의 교회들은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계속적으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활동을 하실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대 성령에 의해서 교회 내에 주어진 선물들은 관찰을 한다면 교회공동체의 능률적인 활동들이 마치 노동의 분업들과 같이 수행이 되도록 선물들이 주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을 하는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어느 개인이 받은 성령이 다른 사람들이 받은 성령의 선물들 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27절 이하에 기록이 된 말씀에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몇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사도이겠습니까? 모두가 예언자이겠습니까? 모두가 교사이겠습니까? 모두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모두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라고 한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교회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성령의 선물들은 피치 못하게 그 기능들이 다양한 상태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담임 목사들의 불평들을 들어보면 자신들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하는 일을 더 원하고 있어도, 실제로 자신들의 마음은 번민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상담을 해야 한다든가,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기독교에 대한 교육을 하는 일도 지나칠 수는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교우들의 신앙생활의 발전을 위해서 행정적인 일들도 해야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교회에서는 행정적인 일들도 해야 하며 이들 행정적인 일들도 또한 성령의 선물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교회공동체의 돌봄과 운영 또한 행정의 원만한 일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약을 하자면 자만 혹은 오만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처음부터 제외되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물들은 오로지 은혜(grace)에 의해서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범하고 다양한 은사들이 주어진 것은 그 누구도 한 개인으로 동시에 그 많은 은사들을 받도록 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 은사들의 다름 혹은 차이는 개인 생활에 대한 영적으로 높고 낮음에 대한 표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은사들 중에는 어떤 것들은 화려해서 일반적인 선물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것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령의 선물들은 그 특성들이 평범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그 특성들이 너무나 평범해서 때로는 그 은사들이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선물들인지를 알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성령으로부터 받은 선물들 중에는 ‘분별’을 위한 은사도 있다(고린도전서 12장10절). 우리에게 분별에 대한 은사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활동들을 구별을 함으로써 그 특성들을 더 참되게 이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특히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그 성육신 사건의 과정에서 성령의 구별을 위한 활동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 했던 것이었다. 성령의 활동이 없었을 때에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엘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 중의 한 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에 베드로는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가 성령께서 주님에 대한 정체를 바르게 구별을 하도록 하신 일의 한 전형적인 예가 되는 것이다(마태복음서 16장16절).

 

승리 주의적 신앙은 성령께서 또한 개인들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들을 통해서도 성령의 참된 정체를 깨닫게 된다고 믿었다. 승리 주의적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 개인들이 받은 선물들을 통한 이익 혹은 은혜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컨대 어떤 불신자가 내가 왜 기독교의 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에 승리 주의적 신앙은 이에 대해서 대답하기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는 많은 경우에 개인주의적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신앙이 개인에게 베풀 신앙의 유익함에 대해서 강조하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축복에 대한 전도는 비록 개신교의 교우들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교단에 속한 교우들도 그들이 전도를 할 때에 흔하게 듣게 되는 말들은 “우리가 교회에 출석을 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유익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예를 통해서 고찰을 할 수 있는 것은 승리 주의적 신앙은 개인이 받게 될 은혜 혹은 이익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를 하게 되면서 신앙인들 개인들은 영광의 신앙에 도취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은 이러한 개인의 영광이 중심이 되는 믿음은 신약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일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인들 개인들이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들임은 사실이나 그러나 고린도전서 12장7절에 기록된 말씀에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교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고 한다. 신앙인들 개개인들은 교회공동체의 회원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대전 유성구 관평동 892번지   Tel : 042-935-3608, 010-4611-1608   E-mail : micah6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