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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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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교회는 이른 바 필리오크베(filioque) 논쟁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눠졌다.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제정한 니케아 신경에 성령의 파송(보내심)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첨부하는 일을 했다. 그 내용으로는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함께 성령님을 인류와 세계의 구원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헬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는 성령의 파송의 일에 하나님의 아드님 되시는 성자 하나님은 그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서방교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서방과 동방의 교회들은 많은 신학적 논쟁을 하다가 결국 두 지역의 교회들은 서로 나눠지게 되었다.

 

성령님을 파송하는 일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함께 파송을 했다거나 혹은 성부 하나님만이 성령을 파송을 하셨다고 하는 일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 언제나 3위1체의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대한 신학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성육신의 학설에 근거가 되어서 발전이 된 것이라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약성경 빌립보서1장19절에서 기록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을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도 표현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기록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며 그 일은, 바울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고찰을 한 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길게 생각을 했던 것은 성령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확실한 토대를 놓기 위해서이다. 신약성서가 우리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말을 하는 때에는 영들을 분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들 중에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영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들에 대해서 평가를 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가 영에 대해서 구별을 하는 데에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과정으로 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어느 누가 성령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하는 일과 위배되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하는 성령에 대한 증언은 잘못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만약 십자가의 신학이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 신학을 성령을 이해하는 일에 활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님에 관해서 증언을 할 때에 십자가의 신학에 대해서 대단히 충실하게 하려고 하고 그리고 가현설에 관련이 된 증언을 피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에 대해서 관해서 말을 할 때에는 그들은 승리주의적 믿음에 치우치는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컨대 그들은 성령에 의해서 충만해진 상황에 대해서도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된 대로 더 이상 거울(초기에 발명이 된 거울들 )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흐미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이 대면해서 는 것처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러한 승리주의적 믿음은 개혁가 루터에 의하면 “그들(그리스도 인들)은 마치 성령을 몽땅 삼켜버린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리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연약하고 숨겨진 상태로 인간의 연약한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대 그들의 생각에 의하면 성령은 능력과 권세로 오시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한 현실들은 극복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께서 오시는 모습은 장엄하고 인상에 남는 분으로 오신다고 믿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단락에서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4가지 부문으로 승리주의적 해석과 그리고 이들 생각과는 대조가 되는 십자가의 신학의 관점으로 고찰을 하려고 한다. 첫 번째로, 성령에 대한 승리주의적 증언이 물상의 세계와 통상적인 관점에 대해서 보고 있는 성령의 활동과 임재에 대해서 고찰을 하려고 한다. 이 일에는 헬라의 철학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2원론적인 세계관이다. 이 2원론적 사상이 주장하는 것은 선한 권역의 영적인 세계와 악한 권역의 물질적인 세계로 나눠져 세계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2원론적 세계에서 인간은 영적인 삶을 꾸준히 추구하며 계발을 하도록 되어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은 물질적인 삶을 부정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육체와 관련이 된 모든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대 이러한 생각들을 수용하고 있는 한 성령의 임재에 대한 개인의 경험은 내적인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적인 체험은 물상의 세계에 대해서 육체의 직접적인 행동들이 많이 감소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대 개혁가 루터가 승리주의적 사상과 투쟁을 하는 데에서 그가 처음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던 것은 중세의 가톨릭교회에서 보았던 그 믿음의 형식이 였는데 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의 삶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에 의해서 살고 있다는 신앙의 형태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주장을 하기를 자신들에게는 그 물상적인 방식으로 기록이 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자신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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