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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 신학연구원

김형석 배충복 허종학 이수영 등 경애하는 동료들과 틈틈히 신우회 활동을 하였다. 어느 날 그분들이 김상복 총장이 운영하는 신학교 입학원서를 가져와 등록을 해주며 “우리 함께 신학공부를 합시다” 권유하여 약3년 동안의 신학과정을 통해 신학을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공부하며 은혜를 받았다. 서울대 영문과 졸업후 도미한 김총장께서는 참으로 지성과 영성과 감성이 풍부한 지성인이요 신학자요 목회자로서 모든 면에서 균형이 잘 잡힌 지도자이며 세계복음주의협의회 회장으로 글로벌 리더이시다.

 

- SNUCA 회장, 북한산 기도처

김영한 회장 후임으로 87년 필자가 40세에 갑자기 SNUCA(서울대기독교동문회) 회장이 되었으나 사실 그 당시에 그 단체를 이끌만한 경륜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마음에 큰 부담이 다가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매일 심야에 북한산 용두봉 보현산 기도처에 가서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주여 저에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건강을 주세요” 간구했다.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바위에 앉아 소나무를 붙잡고 하늘의 별을 벗삼아 오늘의 문제를 하나님께 고변했다. 오늘날 미력하나마 소임을 감당하는 것은 그때로부터 했던 기도의 힘이라 믿는다. 당시에 필자를 도와 총무로 일하였던 김성수 유종성 (후에 경실련 총무) 후배들에게 감사한다.


북한산 민족기도원에서 만큼은 자신을 위한 개인 기도를 삼가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전통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특히 여름철에 수천수만의 기도자들이 몰려들어 기도의 성소가 되어 있었으나 YS 정권 들어서서 등산로를 폐쇄하고 심야에까지 경찰을 동원하여 출입하는 기도자들을 단속하더니 이내 체포 구금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이었다. 60년대에도 청와대 뒷편 평창동 일대는 기도하는 순례자들이 운집하여 은혜를 받았던 전통이 서린 장소였으나 장로 대통령에 의해 제단이 무너졌다. 예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며 기도를 위해 장사하는 자들을 회당에서 쫓아내셨으나 무지한 장로 대통령은 기도의 가치를 무시하고 기도자들을 내몰았다. 명분은 평창동 주택가에서 고성(高聲)으로 기도함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었으나 기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였다.

그곳은 처음부터 주택지 개발의 적지가 아니었으며 거룩한 기도의 성소로서 보존되었어야 했다. 만약 그대로 기도 성소로 보존되어 서울시민들의 기도처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면 유대인의 ‘통곡의 벽’처럼 한국 민족의 한을 토해내는 세계적 명소(名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곡하며 기도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북에서 짐승처럼 학대받으며 신음하는 동족을 위해, 이 땅에 가난으로 고통 받는 빈민들을 위해, 진리에 궁핍하여 갈급한 영혼들을 위해, 흑암에 잡힌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치기 위해, 더러운 죄에 종이 된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통회하기 위해 거룩한 성소를 재건해야 한다.

북한산 기도 출입이 금지된 후 필자는 새벽시간으로 옮겨 기도를 계속하며 “앞으로 언젠가는 서울 사방과 전국에 기도 동산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했다.


- 무지 무능한 YS가 IMF 사태초래

종금사의 외자도입 법적 권리를 탐내는 사채업자들이 YS 아들 소통령에게 접근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우리들에게도 외자도입권을 인가해 주세요” 그렇게 하여 94년도경부터 수십 개 개인투자금융사들이 신용도 없고 경험도 없이 외자도입 인가증을 내밀고 줄을 서자 한국금융기관의 위상이 흔들렸다. “우리에게 달러 좀 빌려주세요” 국제금융계에 한국 거지떼들이 몰려든 형국이 되었다. 외자 저리 단기차입금으로 고리 장기대여금으로 이용하자 달러($) 부족 유동성 위기가 왔다. 900원 이하에서 움직이던 환율이 폭등하자 신문 언론들이 “환율 급변을 왜 막지 못하느냐” 아우성쳤다. 신문 주장이 옳은 줄 알고 무지한 YS는 환율을 내리라고 호통쳤다. 외화차입 시스템이 변동금리를 통해 적절히 조정할 능력을 상실하여 붕괴되고 말았다. 차입금리가 정크본드 정도로 폭등했다. 한국에 IMF 관리사태가 옴으로 무수한 기업들이 파산하고 천문학적 국가자산이 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IMF는 순전히 사람이 초래한 재앙(災殃)이었다. 김영삼의 무능과 부패, 공무원들의 무책임이 결정적이었다.


- 기업을 망친 노조원들, 무책임한 경영자들

회사 직원 십여 명이 어느 날 노동조합을 결성하더니 위세가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가 기업 임원이 매년 협상해야할 법적 기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경륜이 있는 다수 상급직원들이 배제되고 아직 미숙한 하급직원들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해괴한 현상이 벌어졌다. 노조가 막무가내로 “산업은행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황당한 주장이 산업은행에 전달되자 “그래?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그렇게 감정적 결정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과연 얼마 후에 사회적 신용이 없는 부적격 기업(거평)에 매각이 되고 말았다. 금융산업은 주주의 신용도가 생명인데 산업은행을 떠난 회사는 더 이상 해외차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노조직원들의 무책임한 주장에 냉소적으로 기업을 시궁창에 던져버린 산업은행 책임자들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4000억원 배임' 나선주 前 거평그룹 부회장 구속

입력 : 2013.02.09 21:05

수천억대의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에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된 뒤 한국으로 자진 입국한 나선주 전 거평그룹 부회장(52)이 9일 검찰에 구속됐다. ~ 나씨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전 무리한 인수합병을 통해 30대 재벌까지 급부상했던 거평그룹 창업주 나승렬씨(68)의 조카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9/2013020900785.html?news_Head1


- 명예 퇴직

금융회사를 매수한 기업주는 참으로 금융산업에 무식하였고 방만하게 여러 곳에 투자하더니 단기간에 망하여 감옥으로 들어갔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1억달러를 차입하여 기업을 회생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한국의 모은행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바람에 실패하여 98년 초에 감사실 업무를 끝으로 명퇴하였다. 감사 책임자로서 회사의 비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우리 사회의 부패, 비합리적 의사결정, 무지(無知)함에 비통한 심정이었다.

산업은행이 기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주식을 고가로 매입해주어 수십억의 손실을 끼치는 매국노 같은 일도 저질러졌다.


- 어리석은 자 중의 괴수

50세에 퇴직 후 필자는 참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투자에 미스를 범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남에게 속임을 당했다기보다 스스로에게 기만당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돈을 이용하여 유익을 보기 위해 해외투자에 보증을 섰던 일이 잘못되었고, 고교동창의 소개로 담보를 잡고 차용해주었던 건이 담보부실로 잘못되었고, JH라는 인물의 금융사기사건에 관련되어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 당시에 투자자문업무를 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다했지만 필자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필자에게 김원장을 소개하셨던 C장로님을 만난 것이 그 당시였다. 결국 교사였던 아내가 가계를 돌보아야 했고 채권자들의 압력에 필자는 집을 떠나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필자의 인생길에 퇴로가 막히고 그물에 걸려든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까지 공적 부채를 모두 상환하고 비교적 평강을 유지하며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인도하심이 첫 번째요 다음으로는 가해자들을 미워하고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 가운데 필자가 가장 감동받는 구절은 사도바울의 “I am chief of the sinner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고백이다.

필자 역시 고백한다. “본인 이승재는 어리석은 자중의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위로부터 내려온 빚 상환청구서

99년 5월 5일 김원장과 처음 예배를 드리고 개인 상담 중에 “서원하신 것 기억하시나요?” 물었을 때에 만일 필자가 정상적 안정적 상태였다면 서원(誓願)을 기억하고 응답하려는 노력도 건성이었을지 모른다. 재물을 잃은 필자에게 “너는 내게 약속한 빚을 먼저 갚으라” 위로부터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돈이 아니라 '나' 존재를 원하시고 부르셨다. 


- 종의 거처

김원장을 두 번째 만났을 때에 ‘거처할 방을 얻어주겠다“ 했을 때에 귀를 의심했다. 기도원 원장이 무슨 이유로 내게 방을 얻어준다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원장은 기도를 통해 ”네가 이 사람의 방을 얻어주어라“는 음성을 따라 그렇게 했던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적당한 방을 얻지 못하자 김원장이 부탁하여 결국 연수동 C장로님 댁에 거처하게 되었다. 당시에 C장로님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으나 지극한 환대로 2개월여 동안 숙식을 제공해주셨다. 이후에 은혜기도원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종으로 부려 쓰시기 위해 주인께서 문간방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참고 메시지>

http://www.micah608.com/xe/?document_srl=37349 (내가 너를 선택하여 인도하였노라)

http://www.micah608.com/xe/?document_srl=37351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

http://www.micah608.com/xe/?document_srl=37328 (내게 진 빚을 먼저 갚으라)


(오늘로 필자의 걸어온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회부터 김원장과 동역하며 걸어온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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