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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능교사(?) 생활

군대를 전역하고 시골 중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작은 학교는 불가피하게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국사 세계사 도덕과목을 가르치는 만능교사 역할을 하였다. 대학에서 역사를 부전공으로 동서교섭사 서양사 등 여러 강의를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는 반당 60명의 과밀학생이었으며 교사들은 매일 5시간 강의에 방과 후 추가 입시공부를 포함하면 주간 30시간의 강행군이었다. 반복되는 강의와 과로로 교직 생활에 회의가 몰려와 3년 만에 사직했다. 교사 초년병들은 자기가 중심이 되고 노련한 교사들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교육하는 요령을 습득하게 되는데, 가르치기 위해 공부했던 대한민국과 세계의 지리와 역사(history) 지식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 결혼

정영* 대학 선배 댁에 찾아가 염치 좋게 숙식을 할 때가 많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선배님의 여동생이 건강하고 예뻤다. 1975년 우리 결혼 의사를 전해들은 장모님께서 필자를 앉혀놓고 "자네 내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하셨다. "예"하고 대답은 했지만 결혼후 과연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아내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평생 꾸밈없이 흐트러지지 않는 음악 선생님으로 학부형들의 존경받으며 현숙한 아내로 자녀를 양육하며 필자를 지지해준데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필자가 2001년 초에 김원장과 동행하여 미얀마 선교지로 훌쩍 떠났을 때에 온 가족의 배신감과 놀라움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후 돌아와 장모님을 찾아뵈었을 때에 "나는 자네를 믿네"하며 천사처럼 웃어주시던 모습이 필자의 마음에 조상(彫像) 되어있다. 장모님은 필자의 두 딸을 잘 길러주셨고 일생동안 자녀를 위해 헌신봉사해주셨으나 변변한 보답을 해드리지 못하고 2004년 여름 소천 하셨다. 


- 공기업 근무

공기업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했다. 용지매수부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적성검사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 성적우수자라 하여 전산부(컴퓨터부)로 이동하여 그날부터 컴퓨터 공부를 하게 되었고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당시에 파주 부모님과 거주하고 있어 강남구청 본사까지 출퇴근이 여의치 않을 때는 주택연구소 주택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스페셜리스트로서 적응하기 위해 열심을 내었다. 아파트추첨 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4년을 근무했다. 정락성 김원동 김양선 김영철 등 동료 6인이 미국연수를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정부 정책을 위임받아 신분 보장을 받으며 민간 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일하는 공기업 직원들은 나름의 강점이 있다. 오늘날 미가608닷컴을 기획하여 운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부터 학습했던 컴퓨터 지식의 덕분이다. 


- 외자도입 금융사

존경하는 조이남 한국은행 선배님의 인도로 산업은행 자회사 S종합금융회사에 정보시스템부 책임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금융엘리트 동료들과 함께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으며 평안한 사회생활을 영위했다. 종합금융회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원활한 외자도입을 위해 국내 유수의 은행과 대기업이 신용도가 높은 해외 금융자본과 결합하여 만든 것으로 6개의 특수법인이 있었다. 합작 외국인이 상주해 있었고 모든 공식 문서는 영문으로 작성하는 글로벌 시스템이었다. 후일 미국 방문에도 "부시 대통령에게 전하라" 했을 때에도 이 당시 영문을 사용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종합금융회사

http://terms.naver.com/entry.nhn?cid=515&docId=71953&mobile&categoryId=1164


- 모친의 기이한 소천

어머니에게 필자는 특별한 존재였다. 남아선호사상에 경도된 시대를 사셨던 그분에게 아들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미래의 권력이었다. 필자가 고교시절 예수를 믿는다고 하자 "그럼 나는 누구한테 제삿밥을 얻어먹느냐" 하시더니 이내 아들을 따라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시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찬송을 하시며 한결같은 믿음을 유지하시자 부친께서도 자매들도 믿음으로 들어섰다. 시골 청웅교회에는 믿음의 선배 한권사님이 계셔서 신앙 지도를 잘 하셨다. 한 번은 큰 길 가에서 보리밭 김을 매는 십여 명의 아낙네들이 있었다. 아직 초신자인 모친에게 한권사께서 "저분들에게 전도를 하세요!" 하자 주저 없이 그 앞에 나가서시더니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평생 밭에서 일만하고 산 사람입니다. 일만하다 죽는 게 너무도 허망합니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보니 사는 재미가 있습니다. 예수믿고 천당에 가는 공부를 하러 다음 주에 교회로 오세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대충 그런 일장 연설을 하시고 다음 주일날에 보니 그중에 여러 명이 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부친께서 사업에 실패하여 파주로 이사한 후 그곳에서 기도하는 권사님으로 교회를 섬기셨다. 


88년 8월 초에 모친께서 필자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셨다. "아범아! 휴가를 낼 수 있으면 나하고 고향에 다녀오자!" 휴가를 내어 동행해본 일이 없었으나 "예" 하고, 며칠 후에 고향길에 올라보니 모친께서는 고향 지인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요모조모로 꾸리셨고 선조들 산소에도 두루 성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주후 새벽 6시경 전화벨이 울리며 "한현자씨를 아십니까?" 하는 병원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파주 교회 앞길에서 새벽기도를 다녀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 주검 주변에 떨어진 성경책에 큰 글자로 기록된 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이다. 왜? 모친이 참혹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다는 것인가.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2주일전 차량에 동승하여 모친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깜짝 놀랐다. 


"아범아! 너는 염을 해보았느냐? 내가 죽으면 네가 염을 해다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염은 어렵지 않으나 어머니는 아직 65세예요. 오래 사셔야죠" "나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삭신이 아프다. 나는 기도제목이 있는데 아프지 않고 죽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단다" 그 말씀을 듣고 모친의 아픔을 몰랐던 불효를 자책하며 이번에 돌아가 병원에 모셔 진단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모친은 계속하여 "너는 언제 세상을 다- 살래! 나는 징그런 세상을 다- 살았다만 ..." "..." 모친의 예사롭지 않는 대화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던 것이다. 


모친을 염해드리겠다는 약속대로 눈물로 모친을 염하다가 그분의 굽은 다리를 보고 가슴이 메어졌다. 원래 날씬하고 곧았던 다리가 50년 동안 전쟁의 참화 속에서 한 여성이 감당해야할 가혹한 노동에 지쳐 굽어버렸던 것이다. 급히 달려온 승용차에 치어 왼편 팔과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한국인 운전기사가 미군 문관을 태우고 지나가다가 새벽 미명에 사망 사고를 낸 것이다. "미군차에 치었으니 후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운전자의 단순 실수일뿐 미군과 관련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아프지 않고 천국에 가게해 주세요" 모친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만일 죽음에 대한 이같은 사전 대화가 없었다면 모친의 죽음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될 뻔하였다. 필자는 언젠가 생명이 다한다면 '수면 중 조용한 죽음'을 꿈꾼다. 평소에 이별을 정리할 것이며  임종의 순간에 사람과의 슬픈 이별을 연출하고 싶지 않다. 나의 주검을 본 사람은 누구를 무론하고 "할렐루야" 영광을 돌려드릴 것을 부탁드린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http://www.youtube.com/watch?v=IEdX-ctHW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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