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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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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되는 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6장15절)
 
유대나라의 국민들은 일상의 생활에서 십계명들 외에도 지켜야 할 규례들이 무려 6백 여 가지들이 된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할례라는 규례입니다.
남자 아기가 출생이 되면 생식기의 표피의 한 부분을 갈라서 피를 흘리게 하는 규례입니다. 요즘은 그 할례가 남아에게 좋은 일이 된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도 할례를 하는 일이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대 오늘의 성경말씀은 할례에 대한 규례를 예를 들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상당히 보편적인 일들과 관련이 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저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대략 이러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계명을 지키는 일은 그 계명을 단순히 외적으로 지키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키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들이 받게 되는 변화 즉
우리들이 계명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들 자신들이 새로워지는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예컨대 유대교,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들은 여러 가지 자신을 수련하는 고행과 이웃에게 베푸는 적선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일들로는 자신이 변화가 되는 일은 불가능 한 일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에는 인간 개인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비록 자기는 개인적으로는 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을 통해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대 로마서 6장4절에는 다음과 같은 신비한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기 때문에,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또한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한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하게 될 것같습니다.
 
로마서 5장에 의하면 인류를 두 부류로 대별을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담을 통치자로 하고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린다면, 아담을 머리로 하고 아담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power)아래에서 종노릇하는 사람들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와, 평화와. 영원한 생명과, 자유의 권세 아래에서 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고 있는 구원을 받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과 사탄의 의 권세들 아래에서 종노릇하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서 그 분의 통치를 받는 자유의 권역에로 이동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께서 인류와 창조의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언급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찰을 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6장 10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은 고난과 죽으심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서 치르신 십자가의 죽으심은 유일무이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그 당시와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장차 있을 일로 되어 있었고, 그리고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인류역사의 가운데 혹은 중심을 이루는 일로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단번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와 창조의 세계의 구원의 원천은 오로지 예수님의 그 한 번의 십자가의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인류와 창조세계를 구원하시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의 그 수난의 공적 외에는 다른 길이 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의 화친의 제스처를 통해서 마치 인류와 세계구원에 대한 그 원천이 마치 다원화 되어 있는 것처럼 이해를 하는 경우에는 신학적으로는 크나 큰 잘못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5절의 말씀들을 조합을 해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이 되어서 그와 함께 묻히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하게 되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 분과 연합이 되어서 우리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례식에는 언제나 물을 상징적으로 수세자의 머리에 얹는 방식도 있고 교단에 따라서는 수세자를 강물에 잠길 정도로 물에 들어가는 방식을 취해서 셰례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례식에는 물이 관여가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례식에서 물이하고 있는 기능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7장에 기록이 된 말씀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물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 버릴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진행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창세기 7장17절 이하에 기록이 된 말씀을 보면 이러합니다. “물은 그 높은 산들을 잠그고도, 열다섯 자나 더 불어났다. 새와 집짐승과 들짐승과 땅에서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사람까지,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다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은 당시의 인류들에게는 대단히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에 대한 정서로는 물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의 책이 되는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젔습니다.”
상고시대의 인류들에게 물이라고 하는 매체는 당시의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나 두려운 것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다시 깨닫게 하는 사실은 세례식에서 활용이 되고 있는 물은 단순히 세례식에 참여하는 어느 한 개인의 묻어있는 외부의
표면을 씻어내는 정도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연합이 되는 뜻으로 받는 세례는 물에 의해서 지금까지 그 자신을 구성 하고 있던 그 옛 사람이 완전히 파괴되어 죽게 되고 그 후에 새로운 사 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들을 참조해서 결론으로는 다음에 인용이 될 골로새서 3장10절의 말씀을 우리는 더 깊게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되는 새 사람으로 되게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구절에서 “입는다”는 말씀의 뜻은 아담이 통치하는 옛 권세의 지배하에 서 “벗어나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새로운 권세의 권역으로 들어가는 혹은“입는”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얻게 되는 참지식은 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그 분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와, 그리고 창조주의 청지기로서의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9절이하).
 




isaiah

2013.01.22 23:21:51
*.184.62.2

존경하는 교수님! 

기독교 영혼 구원의 핵심 교리을 알기 쉽게 풀어 주심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가

더 밝고 선명하게 마음에 새겨집니다. 

더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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