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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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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복음서들의 설명을 본다면 예수께서 진정한 한분의 인간으로 인간의 삶을 사셨고, 인간의 출생과 죽음에 동참하셨고, 기쁨과 슬픔, 궁핍과 충족, 고통과 그리고 편안함 등의 모든 일에 함께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5절 이하의 말씀들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의 삶의 이러한 일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의 말씀들을 통해서 잘 설명이 되고 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 … ” 이러한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이 세상의 인류에게 오시는 과정은 이처럼 겸허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것들, 예컨대 능력과 위엄과 초자연적이며 최고의 멋진 상태로 오실 것으로 예상했던 기대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들로부터 경시되고 거절이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승리와 영광의 신학은 인간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고대의 교회들이 주창을 한 신학의 학설들 중에는 가현설(假現設)이라는 것이 있다. 가현설은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의 이단적으로 이해하는 학설로서 인류에게 오신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 가현설을 주창하는 고대의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님은 본디 하나님으로 다만 인간처럼 보일 뿐이었고, 그에게는 인간의 영혼 대신에 하나님의 로고스(logos, 말씀)가 함께 계셨으나 이 로고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심을 당하기 전에 예수님의 육체로부터 떠났다고 생각하는 학설이다.

 

가현설이라는 학설은 그 나름대로의 하나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중에서 인성을 근본적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는 학설이다. 이러한 정설이 아닌 이 신학적 학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인류와 창조의 세계에 대한 구속의 의미를 크게 약화시키는 일을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죽는 자리에 내어주셨다는 말씀이 모두 힘이 없는 말씀으로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요한복음서 3장 16절).

 

이러한 이단적 생각들을 단호하게 경계를 하기 위해서 선포된 말씀들이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을 했던 신학자들이 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고백을 한 선언의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참된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며 참된 인간의 참 인간”이셨다는 고백의 말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그분의 "참 인간"이셨다는 것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가현설을 주창하는 신학자들의 생각은 우리가 지나 치계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강조하게 되면 그분의 신성(神性)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 번째 위에 해당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에 의하면 그 어느 경우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 되신다는 그 고백을 부인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신학이 강조하는 바는 가장 유한하고 그리고 가장 한정이 된 인간의 상태,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인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온전하게 계시를 하시기 때문이다.

 

루터가 발전을 시킨 십자가 신학의 중심이 되는 사상은 인간과 같이 가장 한정이 되어있는 존재가 가장 무한하신 하나님을 수용(혹은 영접)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어떤 존재의 유한성이나 혹은 무한성이 확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유한하심, 예컨대 그분의 육신적인 것들로 피곤하심, 배고프심, 죽으심 등의 요소들과 그리고 예수님의 무한하심, 예컨대 그분의 하나님 되심, 신성, 기적을 베푸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 구분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루터에게는 성육신의 과정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신성이 정확히 모든 것들이 한정이 된 인간 예수님으로부터 발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창조주께서 창조물 가운데에 온전하게 계실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터에게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서 죽음의 수난을 겪으셨다고 전혀 주저함이 없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읽으면서 독자들 생각에는 이러한 주제는 성령에 대한 신학이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신학 즉 기독론의 생각이라고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은 삼위일체론적으로 신학의 주제를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육신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에 대해서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신학은 또한 창조주 하나님과 성령하나님에 대해서도 활용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세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한분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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