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힐링센터 /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Profile 격려서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사람들은 마가복음서 15장32절에 기록이 된 대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을 향해 “이스라엘의 왕(일종의 빈정대는 어조로 그렇게 불렀음)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기적을 나타내시지 않은 채로 운명을 하였다. 또한 예수께 나아온 무리들 중에는 “… 예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그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sign)을 요구하였다”(마가복음서 8장11절).

 

물론 그들 중에는 예수께서 진정한 메시아(구원자)가 되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해서 기적을 나타낼 것을 원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희망으로 보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그가 참된 메시아가 되시는 것을 나타내기를 원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자신이 메시아가 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적을 나타내는 일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위해서는 아주 적절한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기적을 나타내는 일은 하시지를 않았다.

 

복음서들 가운데에는 예수께서 기적을 나타내는 일들에 관해서 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 모든 기적들은 대부분이 인간들에 절박하게 필요한 것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기적을 나타내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기적들에 대한 기록들은 대부분은 예수께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행한 기적들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자신이 기적을 행한 장본이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신 일은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적으로 치유된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적을 행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하신 일들은 여러 번 있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복음의 말씀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신 사역들 중에서 기적들은 가장 낮은 정도의 일들로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타내신 기적들이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주제 하에서 드디어 승리주의에 대한 신학적 개념을 분명하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당시의 관중들이 요청을 한 기적은 그가 공생의 상황에서 나타낸 기적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만약 그 공적인 처형의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기적적으로 내려오시게 되었다면 아마도 평소에 그분을 의심을 하던 사람들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그분을 십자가에 처형을 하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그분을 믿고 예배하는 일까지 있었을 것이다. 그런대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공중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을 아무도 공적으로 증언을 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신 후에 그분의 적이 되는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판단이 옳지 않았음을 느낄 사람들이나 혹은 그 분의 부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시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로서 다만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나타 나셨고 그리고 자신을 가까이서 따르던 몇몇 사람들에게만 잠간 나타나신 일은 있었다. 그 외에 바울이 언급한 500여명에게 나타났다는 이야기에서 그들은 대체로 그 시대에서 명성이 높았던 종교적 지도자들은 아니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나타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의미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길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합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거부되고 있었음을 이해 할 수가 있다.

 

마태복음서 12장22절 이하에는 예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 … … 바리새인들은 (이들 일들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이렇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니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예수님이 장사 되었던 빈무덤에 관해서 “도둑이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훔쳐갔다”고 생각을 할 정도의 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에 반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사건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실제로 죽으셨고 그리고 부활을 하시어서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 모든 합리적인 의심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증명의 일은 불가능하다. 부활사건에 대해서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들은 이야기에 대해서 말을 할 뿐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반대의 의견을 세우지 않고 있는 일은 우리가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은 우리들의 것이 되며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는 우리들 또한 증명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예수님은 진정으로 한 분의 인간으로서 인간의 삶을 사셨고, 인간의 모든 출생과 죽음의 일을 나누셨고, 기쁨과 슬픔, 주림과 만족,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하셨던 분이시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5절 이하의 말씀들을 기록을 하는 중에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의 내용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라고 하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125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7) 김종혁 2013-09-30
124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6) 김종혁 2013-09-07
123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5) 김종혁 2013-08-16
122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4) 김종혁 2013-07-23
121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3) 김종혁 2013-07-02
120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2) 김종혁 2013-06-16
119 하나님의 삼위일체론과 그 윤리적 의미(1) [1] 김종혁 2013-06-03
118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完) 김종혁 2013-05-24
117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6) 김종혁 2013-05-07
116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5) 김종혁 2013-04-26
115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4) 김종혁 2013-04-17
114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3) 김종혁 2013-04-03
113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2) 김종혁 2013-03-21
112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1) [1] 김종혁 2013-03-05
111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10) 김종혁 2013-02-16
110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9) 김종혁 2013-02-03
109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되는 일 [1] 김종혁 2013-01-22
108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8) 김종혁 2013-01-11
107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7) 김종혁 2012-12-28
» 십자가와 성령에 대한 신학(6) 김종혁 2012-12-12

대전 유성구 관평동 892번지   Tel : 042-935-3608, 010-4611-1608   E-mail : micah6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