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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박사의 격려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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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성경본문의 서두에는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를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숫자 7은 온전한 수 혹은 거룩한 수를 가리키고 6은 세속의 수, 5은 성령의 수 그리고 수자 3은 하나님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수로 사용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변화산 위에서의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사람의 제자들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한 편모를 계시하신일, 인류와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3일 동안 묻히셨다가 부활 하신 것도 3이라는 상징적인 수와 관련이 된 표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3위로 구원의 역사를 수행하시는 일들과 함께 인류와 창조의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들을 계시하는 데에는 언제나 3이라는 수가 자주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흘째 되던 날”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3이라는 수가 관여 되어 있기 때문에 가나의 혼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관을 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규모의 크고 작은 것들을 막론하고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을 중심으로 해서 진행이 되고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는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으로부터 한 시오리 쯤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나는 예수님께나 예수님의 모친께나 또는 제자들에게도 고향과 같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고향의 사람들은 고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고향은 모든 것들이 그곳 주민들에게 다 알려져 있어서, 고향은 언제나 평범하고 일상적이기는 해도 새롭고 신기한 일들은 없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본문의 “갈릴리 가나에서”라는 말씀은 그 어느 모로 보아도 유명한 고장도 아니고 그리고 특별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도 없는 곳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요한복음서 1장 45절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의 하나인 빌립이 자신이 잘 아는 유명한 정치가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를 하기 위해서 그에게 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예수님에 대해서 그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당장 하는 말이 “나사렛(과 같은 촌에서)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할 정도로 예수님의 고향은 그 지명도가 낮은 고장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사렛이나 가나는 일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오늘과 내일을 살고 있는 작은 고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혼례가 있은 뒤에 그 피로연이 장장 열흘 동안이나 진행이 되는 풍습을 갖고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저력이 있는 집에서 여간 준비를 하지 않고서는 포도주가 모자랄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경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평범한 동리의 넉넉하지 않고 가난한 가정에 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큰 기적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었지만 가난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준비를 못해서 그러한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청함을 받아서 갔던 혼인 잔치에 포도두가 떨어지는” 일은 그 누구에게라도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이 된 대로 혼인을 한 신랑의 가정에 예수님께서 관여를 하시어서 해결방책이 없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기적으로 해결을 했습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과 그들 가정에도 가나의 혼인 잔치 집의 일들과 같은 것이 얼마든지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날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개인과 가정에 이미 오셔서 계십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서 많이 힘들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생애의 주(主)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또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나의 혼인 잔치집의 경우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셔서 우리들 가운데 이미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모친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에게 일어난 문제를 들고 주님께 다가가서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하시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황당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유념을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방식과 때는 철저히 주님의 시간과 방식에 따라서 하시기 때문에 그 일은 예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가나의 혼인 잔치집의 포도주를 그 큰 돌 항아리(한 개의 돌 항아리는 약 25갤런의 물을 담울 수 있음) 6개에 물을 채워서 준비를 하신 것처럼 선하신 예수님의 가장 선하신 뜻에 따라서 하실 것을 믿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순간 생각을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예기 치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때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들 개인으로는 절대로 해결 할 수가 없는 일을, 해결 할 수가 있게 되는 때가 임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다가온 역경의 상황은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상황에 펼쳐져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주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믿고 지켜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와 가정과 공동체의 상황에 일어나는 기적을 영접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강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의 모친께서도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꾼들에게 부탁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모친께서 그들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친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예수님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친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성경에는 “때”라고 하는 표현이 성경의 원문에 의하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오늘의 성경 본문에서 말해지는 “카이로스”(kairos)라는 단어로 된 것이 있는 가하면,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라는 단어로 시간에 대한 개념을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 카이로스는 하나님께서 주로 인류와 창조의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때를 말하는 것이고, 크로노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대로 과거로부터 현재로 그리고 그 현재를 지나서 미래에로 진행이 되는 이른바 자연적인 흐름의 시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님께서 관여를 하시게 되는 시간은, 모두가 인류와 나머지 모든 창조된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구원의 사역들과 관여가 된 시간들이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끝으로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일어난 기적의 실체에 대해서 잠간 생각을 하면서 모든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인들로 모세와 제사장들을 통해서 일상의 생활의 생활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규칙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민족도 지키면 좋을 것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중의 중요한 법이 정결에 대한 예법입니다. 식사를 하기전이나 혹은 외출에서 돌아와서 적어도 손과 발을 돌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결에 대한 예식은 단순히 위생에 대한 행사가 아니라 계명에 관련이 된 규례를 지키는 일이어서 그들의 구원의 신앙과 관련이 된 행사로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정결예식에 쓰이고 있는 물들을 변화시켜서, “좋은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짐작을 하시는 일입니다만 “포도주”는 예수께서 인류를 그리고 창조된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골고다 산에 있는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때 흘린 그 피를 가리키는 상징의 물질입니다. 인류와 창조된 세계가 구원을 받는 일에는 자신들이 준행하는 행사와 행위에 의함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의 그 희생의 공적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사실을, 그 순간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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