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힐링센터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사야 칼럼
이사야 칼럼 은혜의 메아리
이사야 칼럼
미가힐링센터  >  칼럼  >  이사야 칼럼

한국개신교에는 장로교와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 등의 많은 교파들이 있지만 모두 개신교의 신앙윈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대동소이하다. 이들의 뿌리는 종교개혁가 쯔빙글리 루터 칼빈(16C)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18C)도 죤 칼빈의 신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였으며 일부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학적인 논쟁을 삼가하고 신앙의 경험과 실천을 중요시 하였으니 1차 종교개혁가들의 뒤를 이어 다음단계로 발전시킨 개혁가이다. 웨슬리는 체험적 신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웨슬리의 전통을 따르는 감리교에서는 구원문제에서 칼빈의 예정설보다 인간의 결단을 더욱 중시한다. 감리교의 가르침은 보편적 구원, 완전한 성화, 성도의 교제, 명령된 봉사 등 넷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감리교는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며 교육과 사회적 문제들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상동감리교회의 전덕기 목사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등과 함께 은밀히 독립운동을 하였으여 망국의 지도자들 105인도 대부분 그분의 따뜻한 보살핌과 영향 가운데서 민족운동을 하였지만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덕기 목사야말로 굴절된 한국교회 현대사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독인이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분이 살았던 방식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기독인들의 사표가 된다 할 것이다. 히틀러 암흑기에 독일에 본회퍼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전덕기가 있다. 모순의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두분 모두 39세에 순교자의 길을 가신 위대한 인물들이다.

전덕기(全德基) (1875 ∼1914)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서울출신. 9세 때 어버이와 사별한 뒤 작은아버지의 집에서 자라났다. 1892년 스크랜톤(Scranton, M. F.)선교사의 감화를 받아 1896년 세례를 받고 상동교회(尙洞敎會)에 입교하였다. 1896년 서재필(徐載弼)에 의하여 조직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이 협회의 핵심적 간부로서 독립운동가들과 친교를 두터이 하였다. 독립협회의 목적인 자주독립·자유민권사상과 자강개혁운동(自强改革運動)은 기독교복음의 내용과 일치함을 깨달았고, 그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민족운동과 직결되었던 것이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에는 상동교회에서 스크랜톤을 도와 목회에 전념하였다. 1902년에는 감리교선교회에서 전도사 임명을 받고 본격적인 목회활동에 나섰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감리교청년회연합회(당시의 엡웰청년회)를 소집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조약체결에 협조한 을사오적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기 위하여 정순만과 더불어 평안도출신 장사 수십명을 서울에 불러들여 암살단을 조직하였으나 이 거사계획은 일본경찰에 의하여 저지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1907년에는 이준(李儁)과 더불어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거사계획을 성사시켰다. 같은해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비밀결사 민족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는 데에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1904년 그가 상동교회 안에 세운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은 1907년부터 신민회의 교육기관이 되어 활발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감리교 연회(年會)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담임목사가 되면서 당시 상동교회를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12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불리는 ‘신민회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도 이 사건의 혐의를 받고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발병, 병보석이 되었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본회퍼 (1906.2 ~ 1945.4)
디트리히 본회퍼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20세기 후반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와 새로운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신학자였다. 그의 신학은 신학적 체계와 내용보다는 그의 순교자적 죽음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본회퍼는 2차대전중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발각돼 2년동안의 감옥생활 후 종전되기 직전 교수형으로 숨진 인물이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증거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기의 신앙에 따라 그 고백한 신앙을 실천에 옮긴 신앙고백적 삶을 산 기독교인이었다.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본회퍼는 튀빙겐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21세 때인 1927년 ‘성도의 교제’라는 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카를 바르트는 이 논문을 가리켜 ‘신학적 기적’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본회퍼는 신앙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교회의 역할을 일깨워줬다. 신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책임윤리를 말한 본회퍼는 그의 신학과 삶에서 신앙과 행동,개인적 경건과 정치적 책임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함을 제시하고 실제로 보여줬다.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집권한 후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다. 히틀러는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독일의 양심적 지식인과 신앙인들은 히틀러에 항거하다 감옥과 집단수용소,사형장으로 끌려갔다. 본회퍼도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보고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본회퍼는 교회가 박해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유대인을 위하여 소리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안 찬가를 부를 수 있다”고 갈파했다. 히틀러는 교회까지도 그의 말에 복종하는 ‘제국교회’로 통합시켰다. 여기에 저항한 일부 목사들은 ‘긴급 목사 동맹’을 결성하고 제국교회에 반대하는 ‘고백교회’를 탄생시켰다. 고백교회는 목사의 파면과 투옥,교회 폐쇄에도 굽히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1939년 7월 미국 뉴욕의 유니언신학교에 초청교수로 있던 본회퍼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로 돌아갔다. 그의 귀국을 만류하는 미국과 독일 성도들에게는 “조국의 위기에 동포들과 함께 지내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 기독교 재건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편지를 남겼다. 그가 독일로 돌아온지 두달이 채 못돼 히틀러의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1943년 4월5일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본회퍼를 체포했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혐의였다. 본회퍼는 2년동안 독일 각처의 강제수용소를 전전했다. 이때 그가 친구 베트게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은 나중에 ‘옥중서간’이란 제목으로 출판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과 용기를 줬고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내는 단초를 제공했다. 1945년 4월9일 이른 아침 본회퍼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교수대로 끌려나갔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삶의 시작입니다”

다음은 2001.1.2 20:00 받은 음성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주님 앞에 염려하느냐? 여종은 온전히 주님 앞에 나의 생명을 다 맡기며 나의 생명 다 하기까지 주님 앞에 드리마 약속하였지만 아직도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보다는 나의 모든 것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을 때 어찌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를 주님의 뜻대로 한다고 하면서 이 나라에 만방에 전할 수 있으랴! 온전히 나의 모든 것을 맡기며 이제는 담대히 전하라.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오매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마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을 어찌 믿지 못하느냐? 이 모든 것을 전하는 이나 이것을 편집한 사람 외에는 누가 다칠 수 있으랴! 여종은 뒤에 많은 영혼들이 다칠까 두려워하는 것도 있지만 진정 다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이외에 다쳐야 될 잘못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서부터 피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우리가 이 땅에서 피한다고 한들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찾아내시려고 하면 어찌 못 찾아낼 수 있으랴!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잠시 잠간 피하게 하였다가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이 온전히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이 나라를 더욱더 믿음의 국가로 만들며 하나님의 잘못된 정치계를 다시 한번 뒤바꾸어 놓은 역사를 하게 하신다 약속하셨는데 한몸 다 바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수 있으랴!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환난과 고난에 처해있는 것 같지만 내 후대에 그 모든 일을 남기리라 약속하셨사온데 지금 네 생명 다하기까지 생명을 거두어간들 무엇이 두렵고 두려울 수 있으랴! 무슨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으랴! 이 땅위에 사랑하는 귀한 여종과 귀한 남종에게 하나님의 그 뜻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도 참으로 감사하며 이 일을 맡겨 주신 것도 더욱 특권을 얻은 것이온데 무엇이 그리 두려우며 어찌 하나님의 하시는 뜻을 거역할 수 있으랴! 인간의 그러한 모습은 없어지게 하시고 이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되 먼저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이런 일이 아니라도 어떠한 사고로 죽을 수도 있으며 병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참다운 일을 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일을 하다가 생명이 저 천국에 올려간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울 수 있으랴! 하나님의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감당한들 어찌 염려하고 근심할 수 있으랴! -미가608 제1편 19쪽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글쓴이
240 전쟁이 임박했는가? 2004-08-25 isaiah
239 누가 가증한 폭군인가? 2004-08-24 isaiah
238 정치인의 공허한 약속 - "경제를 살리겠다" 2004-08-23 isaiah
237 한국의 젊은이들 2004-08-23 isaiah
236 (질문) 음란죄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싶습니다 2004-08-20 isaiah
235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려는 사람들 2004-08-20 isaiah
234 개신교 3대 개혁가와 한국기독교 2004-08-19 isaiah
233 올림픽 - 페어 플레이(Fair play) 정신 2004-08-17 isaiah
232 히브리서 11장1절 2004-08-17 isaiah
231 (질문)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격언? 2004-08-15 isaiah
230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선택 2004-08-14 isaiah
229 알렉산더 제국과 그리스어 성경 2004-08-14 isaiah
228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보여주노니 정확히 기록하라! 2004-08-13 isaiah
227 (독자서신) 백기완의 박정희 평가 2004-08-12 백기완
226 (답변) 목자들에게는 잘못만 있습니까? (2) 2004-08-12 isaiah
225 놀라운 변화 - 백기완의 양심선언 2004-08-12 isaiah
224 (답변) 목자들에게는 잘못만 있습니까? 2004-08-11 isaiah
223 (독자서신) 저도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2004-08-11 Luke
222 (답변) 깨끗한 인물이 그리도 없나요? 2004-08-10 isaiah
221 (독자서신) 우남 이승만 같은 강력한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2004-08-10 HSJung

대전 유성구 덕명동 191-6   Tel : 010-4611-1608   E-mail : micah6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