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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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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5년을 사이에 두고 비명에 간 두분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 것일까? 그들을 암살한 사람은 각각 드러났지만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가는 아직도 의혹이 있다고 한다. 30년후 "내가 간섭하였노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는 배후에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당시에 박정희가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했던 때에 살고 있었으나 그는 오늘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인간 박정희와 육영수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어떠한 판결을 받았을까?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던 이유는 "우상숭배죄"에 있었다고 하신다. 우상을 숭배하는 죄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죄와 간음죄 기타 범죄들과 차원이 다른 근원적 죄이다. 살아계신 온세상의 창조주를 멸시한 죄이다.

[문세광사건 문서공개] 음모론과 의혹들
이 사건 초기부터 각종 의혹이 나돌았다. 일본 언론과 경찰이 제기한 각종 의문이 그 발원지 역할을 했다. 이것이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근거가 희박한 내용이었으나, 언론이 통제된 상황인 데다 독재에 대한 반감이 겹쳐 사그러들지 않았다. 음모론을 입증할 증거는 사건 후 30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① 왜 현장경호가 허술했나? 대통령 행사장은 비표(秘標)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문세광은 외곽 검문이나 신체 검색도 받지 않았다. 어떻게 그랬을까. 경호 관계자들은 훗날 증언을 통해 “그날은 외국인에 대한 검색이 약화돼 외제 대형 승용차를 탄 문세광은 ‘무사통과’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며칠 전 대통령과 외교사절이 참석한 ‘성웅 이순신’ 연극 공연 때 경호원이 외교관 부인의 핸드백을 뒤져 거센 항의를 받은 뒤였다고 한다. 사건 당일 문세광은 식장에 입장하며 일본말로 “일본 대사관 일행과 만나기로 돼 있다”고 하자 쉽게 경호선을 지났다. ② 나머지 3발의 총탄은 누가? 문세광은 5발이 장착되는 리볼버 권총을 사용했고 범행 뒤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당시 국립극장에는 총 7발의 총성이 울렸다. 3발은 경호원 또는 다른 누군가가 쏜 것이 된다. 그러나 당시 수사본부는 총탄에 대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각종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99년 청와대 경호실이 낸 ‘8·15사건 사례연구’ 자료 등을 보면 당시 막강하던 청와대 경호실이 자신들의 경호 실패 책임을 덮기 위해 무조건 관련 사실의 공개를 막은 것으로 돼 있다. ③ 육여사 살아있었다? 한 월간지가 현장 녹음 테이프를 근거로 80년대에 의문을 제기했다. “가만 계십시오”(경호원) “잡혔나”(대통령) “예…사모님…”이 현장 녹음 테이프의 마지막 부분이다. 월간지는 이를 근거로 문세광이 잡힐 때까지 육 여사가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위해를 가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마지막 대사는 대통령을 경호하던 경호원이 ‘잡히기는 했는데 사모님이…’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는 것이 중론이다. ④ 제3의 저격수 있었나? LA타임스 당시 도쿄 특파원은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의 왼쪽(관객석에서 볼 때)에서 총을 쐈기 때문에 육 여사는 오른쪽으로 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육 여사는 왼쪽으로 넘어졌기 때문에 제3의 저격수가 오른쪽에서 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화면 분석 결과 3번째 총성과 동시에 고개가 젖혀졌으며, 일단 오른쪽으로 흔들렸다가 왼쪽으로 숙여지는 것이 나타났다. ⑤ 정권 안보용 자작극? 문세광 사건은 ‘김대중 납치 사건’ 1년 뒤에 발생했다. 이 문제와 독재에 대한 비판 등으로 수세에 몰린 박 정권이 국면 전환용으로 사건을 꾸몄다는 소설 같은 음모론도 있었다. 외교 관계자들은 “자작극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일본이 박정희 정부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5-01-20

문세광 최후진술 “나는 바보였다”
74년 8월15일 이후 갓난 애 이름을 ‘문세광’으로 짓는 부모는 거의 없다. 정부가 공개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문서에서는 문세광(당시 23)을 고교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빠진 ‘골수 빨갱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문세광이 ‘남한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해서 인민봉기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는 재일조선인총연맹(총련)의 선동에 넘어가 박 대통령 저격을 결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고교 시절 <공산당선언> <김일성선집> 등을 읽으며 ‘전세계 공산주의화’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그는 1972년 9월 총련 오사카 이쿠노니시 지부 정치부장 김호룡(47)씨에게 ‘포섭’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세광의 실제 삶의 흔적을 들여다 보면 ‘혁명 전사’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1951년 일본 오사카에서 석면제품제조업 종사 집안의 4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직업병으로 66년에 사망했으며 74년 저격사건 당시엔 부인 강모씨와 1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세이끼 상고 3년때 자퇴한 그는 오사카 재일한국인거류민단(민단) 이쿠노 기타 지부에 가입해 민단 단비 수금원을 시작으로 플라스틱 공장 노동자, 휴지 수집상, 빌딩 유리 청소부 등을 했다. 그러나 정부 문서는 그가 민단 분열을 꾀하려고 일부러 총련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고 민단에 가입하고 민단계열의 재일한국청년동맹 등의 단체에 가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옥중에서 일본에 있는 처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내와 아들에 대한 애틋한 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형되는 날 입회했던 이들이 전한 그의 마지막 말은 “와다시와 바가데시다(나는 바보였습니다)”였다.
-한겨레 2005-01-20

2002.1.22 9:30 ꍾ 전날 소제목을 인쇄하여 성령께서 첨삭(添削)할 내용을 골라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였을 때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정확히 역사해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기록하라’ 하신 약속대로 금일 역사해 주시다 할렐루야!

오늘까지 우리 주님께서... 지금까지 이 나라에 되어진 대통령들의 업적을 또 하신 일들을 다시 한번 강권으로 역사하나니 일찍이 우리 주님께서 믿음이 있는 이승만 대통령을 이 나라의 초대 대통령으로 허락하시고 오늘의 이 나라를 복음의 나라로 믿음의 나라로 우리 주님께서 세워주신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늘에 와서 이 나라의 모습들이 어찌된 모습일까요? 그 미국 영부인을 통하여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로 복음화 시키니 오늘에 이렇게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지만 오늘의 이 모습이 어찌된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최고의 책임자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먼저는 무슨 이유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퇴폐된 나라가 되었고 지금에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처했는지를 다시 한번 우리 주님께서 역사하나니 다시 그 다음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해 보아라! 믿음으로 온전히 다져진 믿음의 나라에서 다시 육영수 여사를 통하여 이 나라가 얼마나 우상을... 세상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진정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더욱더 믿음의 선진국가로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었지만 그 영부인을 통하여 얼마나 이 나라가 우상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나라를 잘 다스리며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렸다지만 물론 이 나라가 잘사는 나라로 참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고 이 나라를 이만큼 잘살게 하였지만 진정 그 마지막에 그 자녀들의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세상의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대통령과 영부인의 그 모습이 어떻게 되었느냐? 어떻게 비참한 모습으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비춰주었고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비취었느냐? 아무리 나라를 발전시켰다 할지라도 그 모습들이 어찌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자들에게 저주한 것이 아니고... 어찌 잘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리 잘했다할지라도 잘살게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세워진 복음의 국가를, 우상을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그자들이 더 이상 주관함으로 몰고 가면 이 나라가 더욱 망하게 되겠기에 그자들을 내가 다 내가 다-아 ... 내가 그자들을 다 간섭하였느니라. 내가 다 간섭하였느니라. ... 그때에 되어진 박정희 그 아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의 일들이 어떻게 되어갔는지 아느냐? ...아느냐?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 그때 이 나라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느냐? ... 이미 물질로 탐욕하는 때가 그때서부터 일어났느니라.
-미가608 제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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