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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구한말 청년기에 잠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사형선고까지 받기도 하였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를 거쳐 명문 프린스톤에서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미국 박사학위 1호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만...

그리고 그 후 그의 생애는 잘 아시다시피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약도 없는 조국의 독립을 꿈꾸면서 그 좋은 학벌을 가지고 교수도 할 수 있고 어디 취직해서 평생을 잘 살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생애를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안중에서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재필 같은 사람도 청년시절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의과대학을 나오고 의사가 되어 조국과는 상관없이 잘살다가 죽었지요.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미국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미국국적을 취득하고 미국시민이 되었는데 이승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임시정부의 여권을 혼자 만들어 다니면서 무국적자로 남아있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할때마다 미 국무부에서 만들어주는 임시여권을 발급받는 번거로운 일을 감수하면서 또 미 정부에서 어떨때는 반공개적으로 미국국적을 취득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하였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름도 없는 약소국의 일개 독립운동가에 불과하지만 미국내에 광범위한 배경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런 학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 윌슨대통령이 그가 학위받을 당시 프린스턴의 총장이었습니다. 학생시절, 그는 윌슨 총장의 집에도 자주 놀러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승만은 유머가 풍부해서 미국인 지인들을 많이 사귈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3.1운동 후 조직된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기도 하였지만 곧 독립운동을 둘러싼 노선갈등이 나타나고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그의 독립운동노선은 철저한 현실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어버린 일본을 상대로 기껏 장졸 몇십명 모아놓고 병정놀이 비슷한 훈련을 시키는 식의 독립운동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습니다.

한국의 독립은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만, 뒷방 늙은이 수준의 지도자들과 프린스톤 정치학박사의 생각은 다를 수 밖에 없었겠지요. 몇년전 한국에 나가보고 한국의 정치학자, 또 많은 지식인들 가운데 이승만의 논문을 읽어본 사람이 없고 연구조차도 거의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그 흔한 미국박사 가운데 말이지요...

식민시절 우리에게 임시정부가 있었지만 임시정부 내에는 독립투쟁을 할만한 어떤 조직도 없었습니다. 김구 혼자서 윤봉길 이봉창 같은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본의 주요인사들을 테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2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몇십명수준의 조직화 된 군대도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지도자 모두도 이런 현실을 타개할 어떤 생각이나 준비도 별로 한 흔적이 보이지 않지요.

김구가 해방후 개인자격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승만의 결혼을 또 문제 삼는것 같은데 이승만의 생애를 한번 보시지요. 그가 여성문제에 빠져 허우적 거린 흔적도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도 어디 취직하기 위해 이력서를 내 본 적도 없고 또 젊은 시절 그 흔한 연애한번 해본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평생을 혼자 살았지만 여성과 동거를 하거나 했다는 말도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59세가 되던 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과 결혼한 것이 고작입니다.

경로당과 같았던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 밥해주는 여성을 건드리고 또 그와 동거까지 하고 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해방이 되고 초대대통령이 되었고 또 절대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이승만이 치부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초라한 망명객으로 이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평생 조국을 위해 살았습니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사관학교 출신 대통령들이 재임중 천문학적인 돈을 챙기고 자신의 자녀들을 자신이 재임중에 재벌들과 결혼시키고, 또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대통령은 대통령 하기도 전에 집을 새로 장만하고 무얼하는지도 모르는 자기 자식을 위해 미국에서까지 집을 사게 하고 등등...

재임중의 공과를 떠나 사람됨됨이가, 한마디로 그릇의 크기가, 비교가 되는 사람들이 아니지요..

해방후 김구 김규식의 남북협상과 이승만의 단독정부, 등등 역사의 갈림길에서 그가 견지한 노선은 대한민국의 장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다 토론할 수는 없지만,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당시 해방정국의 장래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성자 : 이경원 (출처 - www.cloud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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