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힐링센터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사야 칼럼
이사야 칼럼 은혜의 메아리
이사야 칼럼
미가힐링센터  >  칼럼  >  이사야 칼럼

일본 종교의 통계를 찾아보니 신도(神道) 51.3%,. 불교38.6%, 그리스도교1.2% 라 한다. 근세에 들어 일본은 보편종교인 불교를 밀어내고 일본 교유의 신도 사상을 확립하여 천황을 신격화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신도(神道)가 무엇인가를 알면 일본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웃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의 지도자들이 야스꾸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이유를 알면 그들의 추구하는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도사상의 역사
신불습합사상 : 원래 마츠리가 중심을 이루는 신도에는 사상이나 교리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사상이 전래되면서 그것에 자극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신도사상이 형성되었다. 그 최초의 형태는 신불습합사상이다. 6세기경에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자 그 수용을 둘러싸고 반세기에 걸쳐 소가(蘇我) 일파와 모노노베(物部) 일파 사이에 격렬한 종교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불교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소가 일파가 승리를 거두었고 이 후 쇼오토쿠(聖德)태자를 거치면서 불교가 번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도의 형이상학 체계를 지닌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자 이에 자극을 받아 신도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불교 전래 초기 단계에서 신도와 불교는 대체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때는 외래종교인 불교측에서 신도에 접근하는 형태로 균형관계가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궁사(神宮寺, 신사 경내에 세워진 절)와 신전독경(神前讀經, 신사에서 불경을 낭송하는 것)의 관례이다. 그러다가 나라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 건립을 위해 이세신궁에서 의식을 행하고 우사 하치만신이 상경한 8세기 중엽에 이르면 서서히 힘의 균형이 기울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절을 수호하기 위한 신사가 불교 사원 경내에 세워지고 신도의 가미들에게 보살호가 수여되는 역현상이 일어난다. 신도에 대한 불교의 이와 같은 우위성은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 불보살이 중생 구제를 위해 임시로 일본 신도의 가미가 되어 나타났다는 주장)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이리하여 불교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그에 따라 중세에는 불교의 교의체계에 입각한 습합신도설(텐다이신도와 신곤신도)이 형성되는 등, 본지수적설은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널리 사람들 사이에 침투해 들어갔다. 이상의 내용을 좀 더 상술하자면, 신불습합사상은 대체로 7세기말에서 13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다음 세단계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략)
이세신도 : 전술한 신불습합사상의 전개에 자극받아 비로소 신도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최초의 형태가 바로 가마쿠라(鎌倉)시대 중엽 이후에 형성된 이세(伊勢)신도이다. 13세기에 성립한 이세신도는 모든 신도사상의 남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이세신궁의 외궁 신관들이 주창하였으므로 외궁신도라고도 불리우며, 한편 외궁 신관들은 대대로 와타라이 가문에서 나왔으므로 이를 와타라이(度會)신도라고도 한다. 이 이세신도의 경전으로 {신도오부서}(神道五部書)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외궁 신관들이 외궁의 제신인 도유케노오오가미(豊受大神)의 지위를 고양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쓴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두차례에 걸친 몽고내습(1274년과 1281년)을 통해 국가의식에 눈뜨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에 대한 자각이 고양되어 있었던 터라, {신도오부서}에는 중세의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국사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신도오부서}에 의하면, 도유케노오오가미는 아메노미나카누시노가미 혹은 구니도코다치노미코토와 동일한 신이며, 나아가 아마데라스와 동격이 된다. 즉 이세진구 외궁의 제신인 도유케노오오가미 또한 내궁의 제신인 아마데라스와 마찬가지로 황손에게 삼종의 신기를 부여한 황조신이자 모든 신들의 어버이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전혀 새롭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이와 더불어 이세신도는 신도의 핵심을 기도, 정직, 청정에서 찾았다. 가령 이세신도의 대성자인 와타라이 이에유키(度會家行, 1256-?)는 청정과 정직이 근원적 신의 신성을 표상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이세신도는 다음에 살펴 볼 요시다신도 및 근세 스이카신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불교용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이후 반불교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요시다신도 : 중세 신도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이세신도와 더불어 요시다신도를 빼놓을 수 없다. 요시다신도의 경우는 본지수적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입각하여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띤 신도가 불교에 대한 우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요시다신도의 명칭은 집대성자 요시다 가네토모(吉田兼俱, 1435-1511)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일명 유일(唯一)신도 혹은 원본종원(元本宗源)신도라고도 한다. 가네토모는 주저 {유일신도명법요집}(唯一神道名法要集)에서 당대까지의 신도를 세 유형 즉, 신사의 유래에 입각하여 전개된 신사 중심의 신도론인 본적연기(本迹緣起)신도, 불교와 신도가 습합된 신도론인 양부습합(兩部習合)신도, 요시다 가문에만 전수된 신도론인 원본종원신도로 분류했는데, 이런 시도는 신도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 요시다신도는 유교, 불교, 도교, 신도의 원천은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의 근원인 구니도코다치노미코토에 있으며, 신도는 일본의 근본이고, 또한 존재하 는 모든 것 안에 가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관념은 사실 요시다신도만의 특이한 개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요시다신도의 특이성은 오히려 신도의 이론적 조직화를 통해 불교에 맞서고자 한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요시다신도는 중세 신도론의 정점을 이루어, 중세말에 이르러서는 전국의 신직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근세에 걸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이카신도 : 반(反)본지수적의 관점은 요시다신도 뿐만 아니라, 불교 대신 유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에도 시대의 신도론(가령 다양한 유가신도, 요시카와신도, 스이카신도의 경우)에서도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대표적으로 스이카신도에 대해 살펴 보자. 스이카신도는 후술할 고학신도와 더불어 근세를 대표하는 신도론으로서,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1682)에 의해 주창되었다. 안사이는 원래 일본 주자학의 대표 주자였는데, 스이카신도는 그가 말년에 이르러 집대성한 것이다. 따라서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안사이는 신도의 가미신앙을 매개로 하여 유교적인 도(道)를 추구하면서, 주저 {신대권풍엽집}(神代卷風葉集)에서 "도(道)란 아마데라스의 도이고, 교(敎)란 사루타히코노가미(猿田彦神)의 가르침"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아마데라스의 도란 기기신화에서 아마데라스가 황손 니니기에게 일본을 통치할 것을 명한 신칙에 따라 황손인 천황이 일본을 통치하게 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신도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마데라스의 도란 천황이 일본을 통치하는 도를 가리킨다. 한편 사루타히코노가미는 니니기가 천강할 때 길안내를 맡았다는 가미이므로 당연히 인간의 삶을 안내해주는 가미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사루타히코노가미의 가르침이란 개개인의 수양을 위한 신도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 때 흥미로운 것은 안사이가 오행설에 입각하여 사루타히코노가미(원숭이)의 덕을 주자학의 경(敬)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이다. 즉 원숭이(申)는 오행에서 금(金)에 해당하는데, 금은 토(土)에서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해 토가 굳은 것이 금이므로, 토금(土金)은 일본어로 "츠츠시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경(敬)이라는 것이다. 좀 더 알기 쉽게 풀어 말하자면, 토는 "츠치"(つち)이고 금은 토가 "시마루"(しまる) 즉 단단하게 뭉친 것이므로, 토금은 "츠치시마루"(つちしまる) 혹은 "츠츠시무"(つつしむ, "삼가다"라는 뜻) 즉 경(敬)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스이카신도의 핵심적 사상은, 아마데라스의 자손인 천황이 일본을 통치한다는 것, 그리고 개개인은 경으로써 늘 삼가는 마음으로 천황의 통치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와 같은 스이카신도의 영향력은 실로 심대하다. 그것은 신도계에서 18세기 후반까지 가장 다이나믹한 세력이었다. 그 후 스이카신도는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학신도에게 지배적인 자리를 넘겨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이카신도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령 1930년대 및 40년대의 군국주의 일본은 스이카신도의 사상에 의존하여 초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학신도 : 통상 국학(國學)이라 불리워지는 고학(古學)신도는 불교나 유교 등의 외래 사상을 배격하고 일본 고래의 신도사상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국학의 4대 인물로 고대 언어 연구에 집중한 국학의 시조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滿, 1669-1736), {원씨물어}(源氏物語)나 {만엽집}(萬葉集) 등의 고전문학을 연구한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 국학의 대성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 황국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한 히라타 아츠타네 (平田篤胤,1776-1843)를 꼽는데, 이 가운데 신도사상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현대 일본에까지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노리나가에 대해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장 개관에서 이미 노리나가의 가미(神) 정의를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유명한 가미 정의의 출처인 주저 {고사기전}은 그가 30여년에 걸쳐 완성시킨 필생의 대작이었다. 이 {고사기전}의 서론으로서 그가 42세 때 쓴 {직비령}(直毘靈)은 고학신도론의 에센스라 할 만하다. 거기서 노리나가는 신도란 천지자연의 도(노장사상)와는 다른 것이며, 또한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도(소라이학)도 아니고, 오직 무스비노가미(産巢日神)의 영에 의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시작하고 아마데라스로 이어진 도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마데라스의 자손인 천황이 일본을 통치하는 것은 바로 가미의 통치이고 그것이 곧 신도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직비령}에서 엿보이는 신도적 인간관도 흥미롭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무스비노가미의 영에 의한 것인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태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같은 유교적 덕목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노리나가는 이상적인 일본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즉 일본인은 천황의 뜻과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만 천황의 자비심에 의해 가호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일본인은 가미를 모시고 각자의 신분에 맞추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즐겁게 살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리나가 국학에 대한 후세인의 평가는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리하여 노리나가는 오늘날에도 일본을 내면에서 규제하는 일본적 사고를 형식화한 사상가로서 간주되어 종종 "내면의 노리나가"가 문제시되고 있다. 혹은 "노리나가의 고대 일본어 연구가 그 치밀한 문헌실증주의에 있어 획기적인데 비해, 이 동일한 학자가 조야하고 광신적인 배타적 국수주의를 주창한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라는 이른바 "노리나가 문제"로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배타적인 고학신도의 사상은 파쇼적인 근대 천황제에 이론적, 심정적인 기초를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
국가신도 : 국가신도라는 용어는 패전 후에 일본을 지배했던 연합군사령부에서 만들어낸 용어로서 근대 천황제하 군국주의 시대의 신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국가신도는 고학신도를 토대로 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이다. 다시 말해 국가신도는 근대 천황제가 만들어낸 국가종교로서 신사신도와 황실신도가 결합되어 있다. 실질적인 국가신도의 형성은 1882년 교파신도의 성립부터라고 말해지지만, 그 맹아는 1868년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이미 싹트고 있었다. 즉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면서 왕정복고의 선언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제정일치의 정신에 입각한 국민국가의 재통합 및 근대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와 동시에 신기관(이후 신기성, 교부성으로 이어짐)이 재흥되어 전국의 신사를 관할하는 한편, 경내지를 제외한 신사와 사원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켰으며, 신직의 세습제를 금지하고 신사가 국가의 종사임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이에 앞서 신도와 불교의 철저한 분리가 선언되었으며, 실제로 불교에 대한 신도측의 파괴적인 공격이 나타났다. 한편 1870년에는 대교선포(大敎宣布)의 칙령을 발하여 신도의 국교화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대교선포의 내용은 "지금은 천운이 순환하는 유신의 때이니 통치의 교를 밝히고 가미나가라의 대도를 선양하며 새로이 선교사를 명하여 천하에 포교케 한다"는 데에 있었다. 나아가 1871년에는 관폐사 및 국폐사 제도가 발족되었고 1872년에는 신도 포교의 근본방침으로서 삼조의 교칙 즉 (1)경신애국의 취지를 실현할 것 (2)천리인도를 밝힐 것 (3)천황을 섬기고 조정을 뜻을 준수할 것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882년 이후에는 민간에 유포되어 있던 신종교 제파들이 교파신도 체제 안에 편입됨으로써, 국가신도는 국가의 시설이며 비종교로서의 신사이고, 교파신도는 종교로서의 신사라는 이중적인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신도가 국가의 제사로서 일반종교와 분리된 것이다. 1884년에는 신도의 국민교화정책이 후퇴하고 국민교화가 일반 교육제도 안에 흡수됨으로써 형태상 정교분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교조나 교전이 없고 민족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성립되었던 신사는 메이지 시대를 일관하여 국가의 시설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그리하여 1889년 {제국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신도는 일반 종교와는 구별된다고 하는 이른바 신도 비종교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결과 1890년 {교육칙어}에 의해 신도는 교육의 기본으로서 교전화되었고 1891년에는 소학교에서의 교육칙어 봉독과 어진영(천황의 사진)에 대한 예배가 제도화되었다. 이로써 천황을 절대화하는 국가신도의 교의가 사상적, 법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가령 {제국헌법} 제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규정하면서 제3조에서 "천황은 신성하여 침범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한 {교육칙어}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사상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국체의 교의"를 교육을 통해 강제하기 위한 것으로, "대일본제국은 황조신 아마데라스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후손인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나라로서, 현재의 천황도 황조신의 자손인 현인신(現人神)이시다. 국민된 본의는 억조일심으로 현인신이신 천황의 성지를 받들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체이며 이러한 국체는 오직 일본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으며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다"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체 사상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국가신도는 한마디로 국체신도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이원범 동서대학교 교수, http://kowon.dongseo.ac.kr/~wblee/album.html

2001.1.30 13:30
먼저는 우리에게 아무리 믿음이 있노라 하였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종이라 하였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라고 하였지만 더욱더 뿌리박혀 있는 것은 유교사상이 우리 마음속에 박혀 있기에 우리의 그 모든 것을 뛰어넘지 못하기에 오늘 아무리 믿음이 돈독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먼저 우리에게 박혀 있는 조상들로부터 온 사상이 먼저 박혀 있기에 하나님 앞에 더욱 믿음으로 선 것 같지만 진정 더욱 이끌어 가는 모든 일들이 먼저 들어온 유교사상 때문에 우리가 또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를 지배한 것이 있기에 우리에게 그러한 것이 전해져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이 나라의 더욱 믿음이 들어온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것이 바꾸어지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야 될 터인데 우리는 그 일들을 생각하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더욱 두 가지를 항상 섬기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원하노라.

2003.10.18 21:50
주의 약속하신 약속을 반드시 우리 한국에 모든 문제를 반드시 이루리라. 반드시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분명히 망한다고 하셨고, 그러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로 축복하여 주시는 것은 절대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리라. 대한민국 한국 코리언 먼저 모든 것을 이루게 하시고 또 제일 시급하게 이뤄야 될 중국까지도 이미 약속하신 약속대로 이루어가리라. 반드시 그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그러한 나라가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느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나라에 향하는 뜻이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그러한... 절대로 지금은 참으로 그 나라가 모든 것이 앞서가는 것 같지만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대로 있지 아니하리라. 너무나도 ... 바꾸리라 바꾸리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글쓴이
696 하나님의 햇볕정책 2005-04-11 isaiah
695 "지식인"이란 시대의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2005-04-10 홍관희
694 미국과 한국 -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믿음의 나라 2005-04-09 isaiah
693 "보수" "진보"의 대립구도는 무익하다 2005-04-08 isaiah
692 이흔교수, 수소를 얼음에 저장하는 기술 밝히다 2005-04-08 news
691 자유지식인 선언, "한미동맹 해체정책 위험하다" 2005-04-08 news
690 (독자서신) 강원도 산불에 영향이 없겠지요? 2005-04-08 난초
689 日다카하시 교수 "일본 국가ㆍ사회 한국인에 용서 구해야" 2005-04-07 news
688 (독자서신) 교황에 대한 메시지는 없나요? 2005-04-07 kshan
687 주여 이밤에 비를 내려 불길을 잠잠케 하소서! 2005-04-06 isaiah
686 두산중, 카타르 최대 담수플랜트 계약 2005-04-07 news
685 이 나라가 불교국인가? 2005-04-06 isaiah
684 "이북에 많은 돈을 대었다고 환난을 당할 터인데..." 2005-04-05 isaiah
683 동맹국을 희롱하는 한국의 지도자 2005-04-05 news
682 국보법폐지, 미군철수 주장해온 친북좌익명단 2005-04-04 지만원
681 李海瓚 총리는『지하조직의 거물』 2005-04-04 우종창
» 신도(神道)가 지배하는 일본 2005-04-03 isaiah
679 아름다운 설악산 image 2005-04-02 isaiah
678 미, "군사장비 철수 불가피하다" 2005-04-02 news
677 일본과 선린우호(善隣友好) 증진이 유익을 가져온다 2005-04-01 김상철

대전 유성구 덕명동 191-6   Tel : 010-4611-1608   E-mail : micah6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