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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폴러첸] 북한인권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의 편지

「한국을 떠나며」 

나치 잔당 金正日과 싸우기 위해 나를 추방한 서울로, 평양으로 돌아오겠다

노베르트 폴러첸 의사·북한인권운동가

-평양에서와 똑같은 상황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이 좋아 어디에 가도 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친구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공짜 인터넷을 무제한 할 수 있는 곳은 全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아니면 적어도 북한이 열려 평양으로 돌아갈 그날까지라도 한국에 머무르고 싶었다.

북한에서도 그랬었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美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 수행기자들을 내 차에 태우고 평양의 그늘진 구석들을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비자 갱신이 안 되고 북한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나는 남한으로 내려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 이제 남한에서도 비자 연장이 안 되어 일본으로 쫓겨가면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오디세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나는 왜 남한에서도 추방되어야 하는가? 작년 여름부터 남한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특별한 대중 연설을 몇 번 했다. 「정치적」 연설이었다. 「정치적(poitical)」이라는 말의 희랍 어원인 「polites」는 「시민(citize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나와 한국시민들 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정치적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좌우간 그 덕분에 나는 2004년 11월 부산항에서 再입국이 거부되었다. 그 자리에서 추방되어 일본에서 타고 왔던 페리를 다시 타고 시모노세키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 판정을 내린 법무부 직원들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면서 무려 10시간 이상을 부산항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억류되어 있었다. 언론인들은 고사하고 독일대사관이나 가족에게 전화하는 일까지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어떤 때는 10여 명씩이나 되는 공무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쉴 새 없이 상급 관리들과 논의를 했다. 

그러고 나자 내가 한국에서 정치활동을 하여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는 요지의 자백서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들이밀었다. 평양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그들은 평양에서와 똑같은 음성으로 내게 그 자백서에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 평양에서 그랬듯이 나는 서명을 거부했다. 

-계속되는 한국 정부의 추방 노력 

시간이 갈수록 험악한 인상이 되어 가던 관리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나는 잽싸게 전화를 걸 기회를 포착했다. 운이 좋았다. 잘 아는 「타임」誌 서울특파원 도널드 맥킨타이어와 연결이 되었다. 그가 주선했는지 얼마 안 지나 조선일보 사진기자 한 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나타났다. 그제서야 한국 정부는 자백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그치고 나의 입국을 허락하였다. 대신 외국인으로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고장을 발부하였다.

2004년 12월과 지난 1월 두 달 동안을 나는 비교적 조용히 보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이기도 했지만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응급과 의사인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의사협회 구호팀과 합류하여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로 날아갔다.

1월 중순, 인도네시아로부터 귀국했을 때도 인천공항에서 자백서 서명을 놓고 몇 시간을 옥신각신한 끝에 예의 「경고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언론에 널리 알려진 구호팀들이 함께 있었고 외신기자들이 동행하고 있어서 비교적 빨리 再입국이 허락될 수 있었다.

지난 3월1일 서울시청 앞 反核反金 집회와 3월9일 부천역 광장에서 열린 수도분할 반대 집회에서 나는 다시 「정치적」 연설을 했다. 3월20일 아침에는 그 전날 訪韓한 라이스 美 국무장관이 인터넷 관련자들과 토론회를 갖기로 한 남산 하얏트 호텔에 나타나 라이스 장관 앞에서 북한인권 포스터를 들어 보이고 질문을 던지려 하다가 그녀의 경호원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 美 국무장관과 나는 뭐가 잘 안 맞는다.

나는 독일인이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에게 가해졌던 反인륜적 범죄행위들에 대해 내 아버지 세대가 침묵을 지켰던 빚을 갚아야 한다. 

그래서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할 수가 없고, 침묵을 요구하는 모든 세력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들은 21세기의 나치 잔당들이다. 

비자 면제로 들어온 모든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90일 이상을 체류할 수 없다. 그러나 작년 12월 독일 정부와 한국 정부는 「한국 입국 독일인들이 90일 이상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외교적 합의를 했다.

지난 1월 중순 입국한 날로부터 90일이 되는 4월15일 며칠 전에 나는 그 외교문서를 가지고 서울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가서 어떻게 하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였다. 법무부 직원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는 처음에 나에게 『독일어를 모르니 영어로 된 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다가 곧 『당신은 한국 법을 위반했으니 그 문서를 가져와도 체류기간 연장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자백서에 서명 강요 

4월15일이 되자 다시 비자 갱신을 위해 어딘가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再입국이 거부될 것임을 알았다. 이번에는 동행하는 외신기자들도, 요행히 서울 특파원에게 전화를 걸 기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5월20일, 집에 돌아온 나는 방 한가운데 놓인 소환장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다시 한 번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출두하였다. 오후 1시에 들어가 6시가 넘도록 전과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3월1일, 9일, 20일 세 차례에 걸쳐 정치활동을 함으로써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는 자백서에 「서명하라」, 「못한다」는 승강이가 계속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이번에 나가면 再입국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내게 「정치활동 비자」를 받아가지고 오기 전에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비자는 없다. 그리고 그들 말에 내 죄가 외국인에게 금지된 정치활동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비자가 있다 해도 내게 발부해 줄 까닭이 없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이다. 

2층과 아래층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법무부 직원은 오후 6시 퇴근시간이 지나자 정치활동 내역이 사라진 새로운 문서를 내어 주면서 그제서야 나를 보내 주었다. 6월4일까지 출국하라는 출국명령서였다. 20만원짜리 벌금고지서와 함께.

더글러스 신(申東哲)과 함께 부천에서 수도분할 반대집회를 주최했던 金文洙(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을 찾아갔다. 이 사람은 더글러스와 함께 한국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있는 곳에서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며칠 전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2층 집무실에서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했던 그는 金文洙 의원에게 내가 아무런 불법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再입국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듣자니 金의원의 부탁으로 법무부內 더 높은 사람에게 전화를 해 같은 내용을 물어본 대한민국 국회 법사위원장 崔鉛熙(최연희) 의원에게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은 참으로 신비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참배」,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로 韓日관계가 껄끄러운 이때 내가 있고 싶은 한국에 못 있게 되어 가는 곳이 일본이라니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래도 내가 CIA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내가 미국의 강아지로 보이지 않으려면 워싱턴보다는 도쿄가 100배 낫다. 도쿄에서 돈이 떨어지면 이전에 해변에서 노숙자로 장기 체류했던 몰디브로 갈까? 적어도 거기서는 비자나 체류기간 초과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돌아오리라. 이 도편추방 기간이 끝나고 나의 오디세이가 막을 내리기 전에 서울로, 그리고 金正日이 사라진 평양으로….

〈번역 申東哲 在美 북한인권운동가〉/ 자유개척청년단 제공
-www.freedombuilders.co.kr 05-06-22

<관련 미가608 메시지>
http://www.micah608.com/5-5-11-sacrifi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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