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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모든 일들이 세계 속에 한국을 세우시고자 하는 목적(目的)이 분명히 있느니라. 세계 속에 한국을 드러내게 하심은 세계 속에 대한민국 우리의 민족성(民族性)이 무엇인지를 아셨기에 이 마지막 때에 세계 속에 우리의 인간의 민족의 본질을 가지고 쓰시는 이유(理由)가 있느니라.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며 이 땅위에 원하는 대한민국 한국! 쉽게는 다 ‘어렵다 힘들다 망했다’하지만, 망한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하시고하는 계획을 알았기에, 환란과 고난 뒤에 어려운 중에 알았기에 주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한국 속에 있느니라 있느니라.>

2003년 11월 25일 <아리랑 민족의 비밀> 제하의 위의 묵시와 관련하여 깊은샘님께서 보내주신 서신의 내용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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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먼저 가장 보수적인 전통중에 하나인 무덤 양식이 똑같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積石,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 일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돌담으로 지은 집에 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로 돌제단을 쌓는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단(壇)을 쌓았으며(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제단 앞에서는 잔을 세 번 돌린 후 제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사방식뿐 아니라 특히 유대인들의 장례방식은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가령 상주들이 베옷을 입고 베로 건을 만들어 쓴 뒤 향을 피우며 대나무를 짚고 곡을 한다든가(창37:34)(역상21:16), 곡을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라고 한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이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인류사를 통틀어 사람이 죽었을 때, 베옷 입고 곡을 하는 민족은 오직 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뿐인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은 우리와 같은 농경법과 농구(보습, 쟁기, 도리깨 등)로 농사지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부삽, 불집게, 숟가락, 놋그릇을 사용(열하25:14)하여 매운음식과 부추 그리고 아주 깊고 맑은 물에만 사는 향어(일명 이스라엘 잉어) 등을 즐겨 먹었다.

이렇듯 한국과 이스라엘은 수천년동안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공유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유물이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동짓날의 팥죽과 유월절의 희생양 동짓날만 되면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곤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일종의 신앙적인 행사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애굽기(12:6, 23)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살고 그렇지 않은 애굽사람들의 장자는 모두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선 양의 피를 바르면 ‘死者’귀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 단지파의 자손들에게도 이 관습이 그대로 남아 동짓날 팥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양이 많던 애굽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의 피와 비슷한 색인 ‘팥’이었다는 것. 그러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것은 단순한 절기음식이 아닌 ‘유월절 행사’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사 지낼 때 고사떡을 반드시 팥으로 하는 것도 팥이 양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3500년이란 전통을 가진 이스라엘의 명절이다. 즉 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를 건너가도(pass over)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7월 14일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일주일간 지킨다. 특히 첫날 밤엔 모든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는 거대한 민족적 축제로 밤을 세운다. 무엇보다 유월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희생양’을 바치던 제사의식.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유월절 희생제사의식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유대인 즉 사마리탄 종족2)이다. 이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나불루스’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주로 아랍인들이 사는 사마리아 지방의 한 부락이다. 유대인과 한국인이 흰 옷을 즐겨 입는 이유 유월절이 되면 사마리탄 남자들은 모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리심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많은 수의 양을 잡아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모든 사마리탄 종족의 얼굴과 흰 두루마기에 묻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도를 드린다. 먼저 성경을 읽은 다음 번제를 드리는데 이 의식이 그들을 성화시키며 이를 통해 속죄함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흰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를 연상시키는데, 사마리탄 종족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이 유월절만은 반드시 ‘흰 옷’을 입는다. 흔히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다 하여 ‘백의 민족’이라 일컫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흰 옷은 노동복이 아니라 예복이었다. 구약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예복도 바로 세마포 모시옷(레16:4)이었으니, 예법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 또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예절을 갖추었던 것이다. 2천년전 유대인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베두인족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유목·천막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다. 그중 베두인족은 고대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가장 많이 지키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인류학자들은 주로 그들의 생활과 의식을 통해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고증하고 있다.

베두인족은 결혼할 때 서약식을 한 후, 신부의 부모가 사는 천막 근처에 임시로 초당을 짓고 3일동안 신방을 꾸민다. 이때 이 초당의 주위에 ‘양의 피’를 뿌려 축복을 기원한다.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신부의 부모가 사는 근처에 양의 피를 뿌릴 수는 없었고, 다만 양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신부의 온 몸을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처녀 때는 빨간 댕기를 하고 결혼할 때에는 빨간 치마에 빨간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고서 얼굴에 빨갛게 연지곤지까지 찍었던 것도 일종의 ‘死者’귀신을 쫓기 위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최남선은 이러한 연지풍속이 고려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여인들도 즐겨 찍었다.

5-6세기의 쌍기둥 및 수산리 무덤의 여인들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베두인족들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사상도 유별나서 우리 여인네들처럼 누구나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아이를 못낳거나 딸만 낳으면 이혼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셈이다. 처녀들은 예전의 조선시대 처녀들처럼 머리를 길게 따 늘어뜨리고 다니는데 그러다가 결혼하면 대개 머리를 틀어 위에 얹는다. 그리고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시에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한민족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흔히 한국인의 두뇌가 우수함을 보고 ‘제 2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70년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머리가 뛰어난 민족이며 그 다음이 유대인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1950년 1월경 모 일간지에는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인류학 박사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각 나라 민족별로 골상의 형태를 오랫동안 연구하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얼굴이나 유골을 보면 쉽게 어떤 계통의 민족인지 알 수 있다. 나는 2년반 정도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무덤의 유골을 보아 왔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나와 같은 유대민족 골격에 골상을 하고 있었다.” 동아백과사전에서도 한국인의 골격 구조와 골상이 ‘고대 유대인’의 골상과 동일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골상뿐 아니라 외모상으로 보아도 원래 유대인은 한국인들처럼 황인종(창9:25)이며 머리카락이 검고 키가 작았다(민13:32-33).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城)을 쳐들어 가려고 정탐꾼을 보냈을 때 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곳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한국인이 현재의 유대인들보다 순수 이스라엘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의 역경과 시련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 버려 성경상의 유대인들과는 거리가 먼, 노란 머리카락에 키 큰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 협동의 지혜를 배워 체질화함으로써 모든 생활면에서 이를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특유의 농촌 취락인 키부츠나 협동 농촌인 모샤브이다. 그것은 일종의 우리네 두레나 품앗이, 계의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대개의 유럽이나 미주지역 사람들에겐 ‘키부츠’나 ‘계’가 형성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우리에게는 오히려 사라지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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