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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웅을 통하여 나라를 살린 경우가 많았다. 이스라엘 출애급 당시의 모세가 그러한 인물이다.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으나 40세에 좌절하여 광야에서 떠돌다 80세에 여호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급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금세기에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1874~1954)을 인류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AOL여론조사를 인용하여 BBC방송이 보도하였다. 처칠경은 보수당 노동당을 가리지 않고 당적을 옮겼던 정치인이다. 당략이 아니라 국익을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독일 히틀러의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에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하였다. 영국과 자유세계는 난국의 시기에 그를 필요로 하였고 그는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영웅은 누구일까? 처칠보다 한살 아래의 이승만은 20세에 만민공동회를 이끌다가 24세에 사형선고를 받고 6년동안 복역하던 중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30세에 도미하여 서양의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고 40년동안 독립운동을 하다가 70세에 해방을 맞아 73세에 초대 대통령이 된다.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한미동맹으로 자유민주국가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역사를 망각하고 혼미해진 오늘의 한국인들은 그를 잊고 있지만 성령께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케 하신다.

윈스턴 처칠의 생애
1874년 11월 30일 옥스퍼드셔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4경기병 연대에 입대, 인도로 배속되었는데 특별허가를 얻어 쿠바반란 진압작전에 참가하였다. 1898년 수단원정, 1899년 보어전쟁에 참가하여 종군기사를 신문에 발표하였다. 보어전쟁에서는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하여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900년 보수당의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하여 1904년 당적을 자유당으로 옮겼다. 1906년 이후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식민장관·해군장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 다르다넬스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1915년 해군장관의 자리를 물러났다. 1917년 군수장관으로 다시 입각, 1919년 육군장관 겸 공군장관, 1921년 식민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자유당은 분열하여 쇠퇴의 길을 걸었고, 또 소련에 대한 강한 반감과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노동운동에 대한 위구심에서 보수당에 복귀하였다. 1924년 보수당 S.볼드윈 내각의 재무장관이 되어 자유무역주의를 주장하고, 영국의 파운드화(貨)를 금본위제로 복귀시켰다. 1926년 총파업 때에는 강경한 탄압정책을 주장하여 노동운동가들로부터 적대시되었다. 1929년 내각 총사퇴 후 10년간은 보수당 주류파와 견해를 달리 하였던 탓으로 1931년 거국내각에도, 1935년 보수당 내각에도 입각하지 않고 각외에 머물러 있었다. 보수당 주류파와 견해의 차이점은 당시 초당파적인 국책이라 할 수 있었던 인도자치론에 반대한 것과 대독일강경론을 주장하여 주류파의 유화(宥和)정책에 반대한 것이었다. 당시 보수당 주류파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로 생각하여 유화정책을 주장한 반면, 처칠은 나치 독일의 군사력이 영국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하여 영국의 군비낙후를 규탄하고, 영국·프랑스·소련의 동맹을 제창하였다. 소련과도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의 이데올로기상의 반소주의(反蘇主義)가 영국의 안전보장이라는 지상명령에 자리를 양보한 결과였다. 그의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르러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였으며, 1940년 노르웨이작전 실패를 계기로 보수당은 총리 N.체임벌린 대신에 그의 지도를 요망하게 되어 그 해 총리에 취임하였고, 전시 중에는 노동당과의 연립내각을 이끌고 F.D.루스벨트, I.V.스탈린과 더불어 전쟁의 최고정책을 지도하였다. 1945년 총선거에 패한 후에는 야당 당수로서 집권 노동당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으며, 국제정치상으로는 동서양극화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반소(反蘇) 진영의 선두에 섰으며, 1946년 미국 미주리주(州) 풀턴에서의 연설에서 ‘철의장막(iron curtai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1951년 다시 총리에 취임하였고, 그 해 ‘경(卿:Sir)’의 칭호를 받았다. 1955년 당수의 자리를 R.A.이든에게 물려주고, 평의원으로 하원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는 또 역사·전기 등의 산문에도 뛰어나 《랜돌프 처칠경 Lord Randolph Churchill》(1906) 《말버러:그 생애와 시대 Marlborough:His Life and Times》(4권, 1933∼1938) 《제2차 세계대전 The Second World War》(6권, 1948∼1954) 《영어사용국민의 역사 A History of the English Speaking Peoples》(4권, 1956∼1958)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195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화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http://100.naver.com/travelworld/

BBC "인류 최고 영웅은 처칠"
영국인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874∼1965·사진) 전 영국 총리를 꼽았다.영국 BBC방송의 ‘위대한 영국인들’ 시리즈에서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AOL이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영웅을 뽑는 여론조사에서 처칠이 1위를 차지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미국의 인권운동가였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4위는 전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가 차지했다.빈민촌의 성녀였던 인도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알리의 뒤를 이었고, 미국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6위를 차지했다. 7위는 인도의 민족해방 운동가였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1869∼1948). 그의 뒤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이었다. 그리고 9위는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이었고, 영국의 엘런 매카더가 10위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 걸출한 영국의 위인들이 톱 10에서 탈락하고 가수 프레슬리와 다이애나빈이 10위 안에 들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AOL의 대변인은 정치적으로 때로는 실수가 많았고 독재자들과도 교묘한 흥정을 했으며 골초에다 술고래였던 처칠이 1위를 차지한 데 대해 “가장 큰 시련의 시기에 나라를 위해 위대한 영도력을 발휘한 처칠에 대해 영국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2006.03.19 20:55:10]

~ 처칠은 점차 독일의 위협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비록 처칠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적었지만 그는 계속 재무장을 주창했으며, 특히 영국 공군은 독일 공군에 비해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지배하는 이탈리아군이 에티오피아를 침입했을 때, 처칠은 만약 영국이 이탈리아에 제재조치를 취한다면 무솔리니가 히틀러에게 접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제재에 반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이 일단 행동을 취한 이상 최후까지 목적을 철저히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왕 에드워드 8세의 퇴위(1936. 12. 10)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했을 때, 볼드윈에 반대하여 국왕의 입장을 옹호했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37년에 네빌 체임벌린이 볼드윈의 뒤를 이어 당권을 장악하자 처칠과 보수당 지도부와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독일의 재무장과 팽창정책에 대해 처칠이 제공한 정보의 정확성은 사태의 추이에 따라 몇 번씩 확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고는 자주 무시되었다.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뮌헨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희생시켰을 때 처칠은 그것을 "전면적이며 완전한 패배"라고 비난했다. 전쟁 발발 당시 이미 여론은 처칠의 공직 복귀를 요구하며 들끓었다. 1939년 9월 3일 영국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으며, 이날 체임벌린은 처칠을 해군장관에 임명했다. 소위 "겉치레만의 전쟁"에 대한 불안과 노르웨이에서 영국 파견군의 패배, 그리고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네덜란드 침입 등으로 인해 체임벌린은 사임하게 되었다. 체임벌린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오른 처칠은 참다운 거국 내각을 실현하기 위해 이전의 적대 관계를 뛰어넘어 노동당도 연립정부에 참여시켰다. 1940년 5월 13일 신임 총리로서 의회에서 행한 최초의 연설에서 그는 "나에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전원일치의 신임투표를 얻었다. 됭케르크 철수 후 영국이 침략을 받을 가능성을 경고함에 있어 그는 그 특유의 자신에 찬 불굴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 "대가가 어떤 것이든간에 우리들은 바다에서 싸울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들판과 시가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들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list/B20c2023a.html

2002.1.22 9:30 
* 전날 소제목을 인쇄하여 성령께서 첨삭(添削)할 내용을 골라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였을 때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정확히 역사해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기록하라’ 하신 약속대로 금일 역사해 주시다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보여주노니 정확히 기록하라!>
할렐루야! 오늘까지 우리 주님께서... 지금까지 이 나라에 되어진 대통령들의 업적을 또 하신 일들을 다시 한번 강권으로 역사하나니 일찍이 우리 주님께서 믿음이 있는 이승만 대통령을 이 나라의 초대 대통령으로 허락하시고 오늘의 이 나라를 복음의 나라로 믿음의 나라로 우리 주님께서 세워주신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늘에 와서 이 나라의 모습들이 어찌된 모습일까요? 그 미국 영부인을 통하여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로 복음화 시키니 오늘에 이렇게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지만 오늘의 이 모습이 어찌된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최고의 책임자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미가608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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