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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 謙遜 modesty, humility"은 인간사회 고래(古來) 최고의 덕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겸손"만으로 천상천하 모든 세상사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복종하려면 사람의 말에는 거역해야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 교만해 보이는 일이 하나님 앞에는 겸손한 자세가 되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도 자기의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겸손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된다. 의분(義憤)하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우상숭배 놀음을 보고도 의분하지 않는 신자는 북한 독재자 앞에 겸손한 자세일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교만한 자이다. 겸손의 기준은 하나님이며 불의한 세력 앞에 겸손한 것은 겸손이 아니라 비굴이 된다. 말틴 루터의 "하나님 앞에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진리 앞에 개혁되기까지 중세시대 는 "하나님은 너무나 높으신 분이라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사제가 있어 중보해야 된다"는 로마교회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교회 사제를 존중하는 것이며 겸손한 모양을 갖추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진리는 그것과 상반된 것이며 "일부러 겸손함" 즉 가짜(false) 겸손에 해당하는 것이다. 말틴 루터는 로마교회 앞에는 교만하고 당돌한 자이었으나 하나님 앞에는 겸손한 인물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합당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참다운 겸손이다. 어떤 천사나 종교적인 제도나 특정인에게 종속되어 평안을 찾으려는 "노예의 욕구"가 인간에게 있으나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자유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겸손이 지나치면 비굴이 된다 "Excessive modesty lapses into servility". 악한 권세에 굴복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여 세상을 정의롭게 개혁하는 사람이 진정 겸손한 사람이다.
2000.10.7(토) 19:00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는 네게는 당돌한 고집과 추진력이 있기 때문이다
♬ 이 아름다운 자연을 너는 바라볼 때에 아름다움으로 열매맺기를 원하네 나의 딸아 나의 사랑아! 이 세상에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주님의 그 은혜를 지고 살건만... 너는 나의 빚진 자라. 내가 너를 선택한 한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 너를 선택한 딱 한가지 이유가 있느니라. 세상에 아무도 해낼 수 없는 그러한 너에게는 당돌한 고집과 어떤 일에도 사랑과 인정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일을 끝까지 해야겠다는 그러한 다짐이 있었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주님이 너에게 맡겨준 일에 이렇게 주저하느냐? 이 세상에 어떠한 형편도 사람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나니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지 말며 온전히 주님의 길로만 걸어가는 여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땅에 참으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또 이 땅에 너무나 많고 많은 능력의 종들이 있다 할지라도 참으로 여종에게는 이 세상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맡겼느니라.
http://www.micah608.com/5-7-12-save-NK.htm
http://www.micah608.com/6-1-13-attack.htm
http://www.micah608.com/6-1-28-never-compromise.htm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Let no one cheat you of your reward, taking delight in false humility and worship of angels, intruding into those thingswhich he has not seen, vainly puffed up by his fleshly mind,
(박윤선 성경주석 - 일부러 겸손함은 그 아래 ‘천사숭배’란 말이 잘 밝혀준다. 인간은 직접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으므로 천사를 중보로 해야 한다고 하며 거짓 스승들은 천사 숭배를 고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러 겸손함(false humility)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높으시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은 우리는 그 앞에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엠3:12). 이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숭배로 떨어지는 것은 ’일부러 겸손함‘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중보로 주신 은혜를 배척함이고, 하나님이 내신 참 구원의 길을 버림이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 謙遜 modesty, humility"은 인간사회 고래(古來) 최고의 덕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겸손"만으로 천상천하 모든 세상사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복종하려면 사람의 말에는 거역해야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 교만해 보이는 일이 하나님 앞에는 겸손한 자세가 되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도 자기의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겸손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된다. 의분(義憤)하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우상숭배 놀음을 보고도 의분하지 않는 신자는 북한 독재자 앞에 겸손한 자세일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교만한 자이다. 겸손의 기준은 하나님이며 불의한 세력 앞에 겸손한 것은 겸손이 아니라 비굴이 된다. 말틴 루터의 "하나님 앞에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진리 앞에 개혁되기까지 중세시대 는 "하나님은 너무나 높으신 분이라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사제가 있어 중보해야 된다"는 로마교회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교회 사제를 존중하는 것이며 겸손한 모양을 갖추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진리는 그것과 상반된 것이며 "일부러 겸손함" 즉 가짜(false) 겸손에 해당하는 것이다. 말틴 루터는 로마교회 앞에는 교만하고 당돌한 자이었으나 하나님 앞에는 겸손한 인물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합당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참다운 겸손이다. 어떤 천사나 종교적인 제도나 특정인에게 종속되어 평안을 찾으려는 "노예의 욕구"가 인간에게 있으나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자유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겸손이 지나치면 비굴이 된다 "Excessive modesty lapses into servility". 악한 권세에 굴복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여 세상을 정의롭게 개혁하는 사람이 진정 겸손한 사람이다.
2000.10.7(토) 19:00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는 네게는 당돌한 고집과 추진력이 있기 때문이다
♬ 이 아름다운 자연을 너는 바라볼 때에 아름다움으로 열매맺기를 원하네 나의 딸아 나의 사랑아! 이 세상에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주님의 그 은혜를 지고 살건만... 너는 나의 빚진 자라. 내가 너를 선택한 한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 너를 선택한 딱 한가지 이유가 있느니라. 세상에 아무도 해낼 수 없는 그러한 너에게는 당돌한 고집과 어떤 일에도 사랑과 인정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일을 끝까지 해야겠다는 그러한 다짐이 있었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주님이 너에게 맡겨준 일에 이렇게 주저하느냐? 이 세상에 어떠한 형편도 사람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나니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지 말며 온전히 주님의 길로만 걸어가는 여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 땅에 참으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또 이 땅에 너무나 많고 많은 능력의 종들이 있다 할지라도 참으로 여종에게는 이 세상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맡겼느니라.
http://www.micah608.com/5-7-12-save-NK.htm
http://www.micah608.com/6-1-13-attack.htm
http://www.micah608.com/6-1-28-never-compromise.htm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Let no one cheat you of your reward, taking delight in false humility and worship of angels, intruding into those thingswhich he has not seen, vainly puffed up by his fleshly mind,
(박윤선 성경주석 - 일부러 겸손함은 그 아래 ‘천사숭배’란 말이 잘 밝혀준다. 인간은 직접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으므로 천사를 중보로 해야 한다고 하며 거짓 스승들은 천사 숭배를 고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러 겸손함(false humility)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높으시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은 우리는 그 앞에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엠3:12). 이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숭배로 떨어지는 것은 ’일부러 겸손함‘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중보로 주신 은혜를 배척함이고, 하나님이 내신 참 구원의 길을 버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