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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地域갈등보다 나쁜 左右갈등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

좌우 갈등은 이념성 때문에 ‘제 아비도 몰라볼’ 정도로 쉬 추상화되고 곧바로 폭력화된다. 그 극치는 ‘국제적 내전’이다. 사망 150만명을 포함하여 500만명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좌우내전이었다. 6·25는 인명피해 면에서 러시아, 스페인, 중국내전, 월남전,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 수십만 내지 100만여명을 앗아간 어떤 좌우내전과도 견줄 수 없고, 장기분단의 후과(後果) 면에서도 세계 최악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좌우 원혼(寃魂)과 가장 긴 좌우 분단의 통한(痛恨)이 서린 곳이 바로 이 땅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이 좌우내전에서 가장 단호한 교훈을 끌어내야 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알 만한 식자와 정치인들이 ‘정치도 새처럼 좌우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둥,(좌우정당에서 지역정당으로 나아간 유럽과 반대로) 지역구도를 넘어 보혁정당 체제로 가야 한다는 둥 좌편향적 담론(談論)을 퍼트리더니, 급기야 중도세력을 분식(分食)하고픈 야당 내 극우공안파와 ‘경륜의 JP’를 비롯한 수구우익도 한때 이에 호응하는 야릇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 좌우야합의 보혁(保革) 담론은 너무 세고 너무 오래 된 ‘좌우날갯짓’으로 야기된 동족상잔과 장기분단의 극한 비극을 망각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치매현상이다.

지역구도 타파와 ‘보혁’ 정책정당 건설을 모토로 민주당을 부수고 창당된 열린우리당은 이 비(非)이성적 담론의 직접적 소산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역구도를 깨기는커녕 영호남 갈등에다 호남분열과 충청·수도권 간 갈등을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 지역갈등에 의해 묻혔던 낡은 좌우갈등을 다시 부추겨 증폭시켜왔다.

저 진저리쳐지는 역사를 떠올릴 때 한국에서는 ‘좌우’ 범주로 정치를 논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더구나 ‘공산당 허용’ 운운하는 것은 저 원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요, 중국공산당보다 더 원리주의적인 민노당의 존재를 생각할 때 상식도 아니다. 게다가 오늘날 보혁정당체제는 최근 세계적 경험에서도 전혀 선망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좌우가 편싸움하는 나라는 다 가난하고 좌우대립을 넘어선 나라는 다 부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좌우’ 범주로 진보와 보수를 말하는 것도 이제 시대착오다. 좌우익은 수구화된 반면, 좌우를 넘어선 중도보수·중도개혁 세력들은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갈등이든 잘 한다고 부추길 것은 못된다. 그럼에도 굳이 비교하자면, 좌우갈등은 민족을 파멸시킬 정도로 ‘파괴적’이었던 반면, 지역갈등은 비교적 ‘생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치열한 영호남 경쟁은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달아 달성하게 만든 역사적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 고향을 기준으로 삼는 지역갈등은 좌우갈등과 달리 적어도 ‘제 아비는 알아보는’ 점에서 인륜을 교란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망국적’ 분리주의와 맹렬한 대중투쟁도 불사하는 서구의 격한 지역갈등에 비하면, 지역수준에서는 열나게 싸우더라도 국가수준에서는 통합과 단결을 강력히 지향하며 분리주의를 배격하는 한국의 지역갈등은 세계에서 가장 온건하고 이성적인 것이다.

아무런 비교지식도 없이 이 지역갈등을 ‘망국적’이라고 비하하며 파멸적 보혁대결로 바꾸려는 것은 이 점에서 진정한 ‘망국의 지름길’이다. 따라서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 때문에 갈갈이 찢긴 나라 상황에 대해 반성하고 노선 전환을 예고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반성은 국민을 오도하는 저 비이성적 모토로 나라를 사분오열시킨 여당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자문할 정도로 근본적이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0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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