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받은날 : | 2002-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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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 6:30 |
장 소 : | 여수시 화장동 849-1 |
음 성 : | 음성화일을 준비중입니다. |
2002.08.06 16:30 여수시
♬ 기도했나요 기도하리라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 기도하리라 나의 갈길 다가도록 ... ♬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십자가의 도가 무엇이며 십자가(十字架)를 진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각자에게 부탁하신 십자가를 지는 일은 ... 예수 안에서 모든 일이 하나로 둥글둥글 둥글하게 돌고 돌고 돌아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하나가 지체 지체가 모여서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같이 겸비하여 이루어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각자에게 주는 십자가를 지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일이 너무나도 멀리 크게 생각하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잘못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 땅에 모든 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기에게 각자에게 져야 될 십자가를 십자가의 도를 너무나도 어렵게 너무나도 힘들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개인의 생각이 아니겠는가?
※ 십자가를 지는 길은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같이 겸비하여 이루는 일이라 하신다. 목숨을 바쳐 순교하는 일만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요, 지금 삶의 현장에서 내게 맡겨준 일에 힘을 다하여 충성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라 하신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예수를 잘 믿는다는 그 자체는 무엇이겠는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잘 믿으며 하나님중심 교회중심 목자중심 되어져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잘 섬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땅에 외치는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목자중심!’ 물론 참으로 필요한 말씀이고 필요한 단어이긴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중심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전하는 것이겠는가? 이 땅에 다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 하에 교회아래 목자아래 자기들의 종으로 삼아서 묶어 놓으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중심이 무엇인지를 바로 전하고 있는가? 자기 생각에, 교회 생각에, 목자 생각에 잘 안 맞고 진정 말씀에 비추어서 무엇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이 땅에 교회들이 해야 될 일과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명령하시고 부탁하신 일이... 진정 하나님 중심의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 말틴 루터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하여]에서 “그리스도교인은 모든 것 위에 있는 완전한 주(主)로서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교인은 모든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종이며 그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나 노예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신앙인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더 이상 미래의 것이 아닌 선취적(先取的)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내적으로 자유함을 얻은 사람은 외적 상태가 어떠하든지 이웃에 봉사하는 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의 신학이기도 하다(고전9:19).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목자들은 교인들을 자기들의 종으로 삼아 묶어 놓았다 하시니 어찌된 일인가? 목자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목자중심”을 외치고 있으나, 주님이 명령하시고 부탁하신 일은 고려치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에 유익을 따라, 교회 운영에 유익을 따라, 목자의 구미에 따라 집중적으로 우선적으로 항상 말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하나님의 중심에서 멀어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목자들에게 굴종하는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자에게 순종하지 말라는 것인가? 현대에 있어서 목자의 위치란 무엇인가? 목자는 신도들과 특별히 구별되거나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같은 양(羊) 가운데 대표자로 인정된 교회의 지도자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지도자’라는 말도 칭함을 받지 말라 하시며 참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 하셨다). 지도자는 존경을 받으며 그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심점에 서 있으나 오늘날 민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특별히 구별된 존재가 아님과 같이 교회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랍비’ ‘선생’ ‘아비’ ‘지도자’ ... 이것들이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 좋아하는 칭호였으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부름 받는 것을 금하시고 ‘너희는 다- 형제일 뿐이라’ 하셨으니 이것이 당시에 주님께서 종교를 개혁하신 내용인데 오늘날 교회는 마치 양과는 구별되어 예수님(목자)의 반열에 드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성경을 가르친다하나 참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는 등한히 하고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교인이 마치 잘 믿는 교인인 양 가르치고 있음은 주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목자의 직분은 선생과 지도자로 불리움을 받기를 사양하고 섬기는 자로 남고자 할 때는 거룩한 직분이 되지만 스스로 자기를 거룩한 존재로 드러내고자 할 때는 버림을 당하는 직분이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마23:7-11)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은 외면하고 교회법 목자법으로 성도를 속박한다
바로 = 전할 수 있는, 바로 말씀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진정 이 땅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자중심! 교회중심! 더 나아가서 하나님중심! 이라고 외쳐대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것이 하나님중심으로 각 교회들은 이끌어 가고 있으며 목자들은 이끌어 가고 있는가? 한 단체, 한 교회, 한 생활 터전, 한 기업으로 보는 것이 지금 현실의 교회들이 아니겠는가? 진정 하나님중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 중심 하에 하나님의 일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면 어찌 이렇게 퇴색(退色) 되어져 가고 퇴폐(頹廢) 되어져 가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은 누가 제일 먼저 하나님의 그 일을 그르치며... 누가 제일 먼저 하나님중심이라고 외치지만, 누가 먼저 하나님의 일들을 그르치고 있는가? 먼저 주님 앞에 세상 앞에 참으로 내 모습을 먼저 비추어 보되 제일 먼저 주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주의...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섬기며 이끌어 가야 될 주의 목자들이 되며 참다운 참 선지자의 역할을, 대변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도구로, 말로는 하나님중심!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목자중심! 교회중심! 목자중심! (하면서) 하나님 중심 하에 자기에게 얽매이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하기보다는 교회법에, 목자법에, 정해 놓은 법에 따르라고 하는 것이 지금 현재 현실에 처해있는 교회상(敎會像)들이 아니겠는가?
※ 누가 먼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있는가? 불신자들이나 성도들이 아니라 목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에 얽매이고, 전통에 길들여지고, 관습에 찌들어서 자기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예언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모세와 아론은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어준다는 듯 백성들에게 행동했을 때, ‘하나님’이 있어야할 자리에 ‘내’가 들어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세와 아론은 여호수아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들을 얽어매는 제도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는 퇴폐된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시다. 종교개혁을 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아 망하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망하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될 것이다.
(민20:10-12)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기업화되어 물질을 강요하는 교회
진정 우리 = 믿음의 올바른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섬기며 하나님을 아무리 우리가 잘 섬기며 잘 지도하며 잘 이끌어 간다고 하지만 진정 그것은 하나님중심이라고 하지만 내 중심으로, 목자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역이 이루어지면서 이 땅에 믿음을, 모든 영혼을 구원하면서 심령 심령 속에 외쳐대지만 지금의 한국의 모순된 교회 모습과 목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구나. 진정 하나님 앞에 주일과 십일조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어떤 것이 올바르게 지도해야 될 목적인지 바로 말씀 가운데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 속에 정해진 이치이지만 그 흐름이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세습적인 풍습 속에서 말씀으로 그것을 지키는 전례이기보다는 교회가 기업화(企業化)되어가는 모습 속에서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믿음이 있는 자나 믿음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여야 되며 믿음으로 소화시킬 것인지 진정으로 말씀 가운데 왜 = 십일조를 해야 되며 왜 주일성수를 해야 되며 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해진 시간들을 참으로 믿음 안에서 교회 안에서 또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드려야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바로 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 대언자로 세워 놓으신 목자들이라고 하지만, 자신부터 지킨다고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 생활의 십일조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물질의 십일조만 강요되어졌지 시간과 우리의 생활과 모든 십일조는 그렇게까지 어떻게 생활 속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으며 전해지고 있는지, 참으로 물질을 강요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 속에서 왜 물질이 강요되는 것인지,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한다면, 세상으로 본다면 기업화되어져가는 이 모습들을 참으로 우리 주님이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알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당연히 지켜야 될 상황이지만 그 십일조와 주일성수와 하나님의 정해진 그 물질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 바로 가르칠 수 있는, 말씀 속에서 정확히 우리가 알아야 될 상황들을 바로 전하지 못함이 지금 현재 교회들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 당시 교회의 관습이 되어있던 면죄부(免罪符)를 판매한 교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던 것인데 오늘날 기업화된 교회에서 면죄부를 팔고 있지 않는가? 오늘날 면죄부가 무엇인가? 의(義, Justice)와 인(仁, Mercy)과 신(信, Faith)에 대한 설교 대신 오늘날 이 땅에서 주일성수와 십일조 등 율법을 강요하는 설교를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듣는다.
말틴 루터는 부정(不正)한 설교가 무엇인가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면죄증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까지라도 그 자신의 재산으로 갚아주려고 한다는 것을 크리스챤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보이는 교회당보다 믿음의 본질, 의로움의 확립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 (말틴 루터, 95개조 논제 제51번)
“설교하는데 있어서 면죄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시간 또는 더 긴 시간을 쓰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부정(不正)을 행하는 것이다.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위엄과 그 말씀을 설교해야 할 필연성으로부터 볼 때 충분히 명백한 것이다. 반면에 면죄부 설교는 필요하지도 않고 별로 가치도 없는 것이다” - (95개조 반박 논제 해설 제54번)
※ “우리 한 민족에게도 과거부터 다양한 신적 존재가 수천년간이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그 중에 어떤 것도 인간을 기독교처럼 속박하고 예속시켜 굴종을 강요하고 독단과 독선으로 지배하며 민생을 극도로 피폐케 하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고작해야 계절 맞춰 돼지 머리 하나, 과일 몇 알, 떡 한 조각 정도면 족했고 그것도 아니면 정화수 한 그릇으로도 족했던 것이다. 기독교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흘이 멀다 하고 교회로 불러모아 위협하고 공갈치고 협박하는 교활한 심리적 공격을 받아 가며 십일조를 바치고도 가외로 각종 명목의 헌금을 강요당하는 생활의 속박을 일관되게 평생 당해 가면서 살 필요까지는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 어느 안티기독교 싸이트에서 퍼온 글, 이 글은 반기독인의 극단적인 말이다. 그러나 지금 주님께서 교회를 책망하는 내용과 크게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하나님과 주변인들이 이러한 시각으로 교회를 인식하고 있기에 종교개혁을 하시려는 것이다.
(마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눅19: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십일조와 부모공경의 법이 같다는 것을 아느냐?
참으로 우리가 말라기 3장 말씀처럼 말씀 속에서 정해진 하나님의 물질이라고 정확히 말씀 속에 기재가 기록이, 또 그것이 말씀 가운데 역사하고 있지만 진정 십일조의 의미와 우리가 생활 속에 행함으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복음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증거할 수 있는지 참으로 보여지지 아니하며 나타나지 아니하며 참으로 어떠한 것이 잘 믿는 성도의 도(道)인지 참으로 내 모습부터 내 자신부터 목회자들부터 지켜야 될 상황이 아니겠는가? 어떠한 부분은 십일조이고 어떠한 부분은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인지, 우리가 진정으로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믿음을 지키게 하면서 믿음의 사람들로 믿음의 성도들로 세워주시매 하나님의 그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그 생각과 습성을 알기에 십일조라는 개념을 주어서 운영함에 있어서 물질이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타까운 점이 있지 않으셨을까? 참으로 아무도 해석할 수 없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십일조의 개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그것은 각자 많은 목자들이 많은 이 일을 해석하는 자들이 설명하고 설교하고 있지만 제일 정확히 역사하시는 것은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며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그 말씀 속에서 우리 현 생활과 비추어볼 때 왜 이러한 말씀 속에 기재가 되어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사람들의 그 습성과 생각을 너무나 잘 알기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뜻과 같은 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 문제가 풀어질 것이며,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며, 더 쉽게 우리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참으로 행하고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말씀 가운데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그 행함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았을 때 지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은 참으로 주님께서 지키라고 한 명령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외치고 무엇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또 그것을 연구하며 말씀 가운데 주신 것을 지켜 행하는 나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첫 계명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계명을 지켜 행하되 진정으로 그 계명대로 약속대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 중심 하에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 참으로 이것은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일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다시 한번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확히 해명할 날이 오나니 그 일을 위해서 기도로 말씀으로 준비하며 더 정확히 이 땅에 책자로 기록되어져 나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가 오나니 기도하고 준비하라!
♬ 주 앞에 내가 엎드려 주님을 찬송함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주님의 ♬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때가 이르매 마침내 역사(役事)하리라! 먼저 하나님께 나의 생각을 온전히 맡기라! 세상에 어떠한 모양으로도 마음을 두지 말라!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너무나도 마음에 방황하며 세상의 생각을 마음에 둘 때...
※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십일조를 정확히 한다는 것은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계율의 율법적인 속성과 기준의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갈등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성령께서 설명해 주시지 아니하고는 무엇이 참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를 옹호하는 자들에게도, 부인하는 이들에게도 구약의 율법을 초월하여 신약시대의 복음적 해석이 절실히 필요한 문제이다.
※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으리라’ ‘네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와 축복이 있으리라’ 두 가지 계명이 모두 복을 받는 약속을 동반한 말씀이다. 우리에게 복을 주기 위한 약속의 말씀이지 우리에게 부담을 안겨주기 위한 법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녀된 자로서 고맙고 감사하여 당연히 드리는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과 같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라 하시는 것이다. 낳아 주신 부모님께 효도를 심었을 때 생명이 길어지는 복을 받을 것이요 물질을 주신 하나님께 물질로 심었을 때 물질의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헌금하는 것이 아까워 평생토록 헌금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평생토록 할애한 사람은 모든 소득의 원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칭찬받아 마땅하다. 헌물에 관한한 이것이 표준이다. 예배시간에 헌금명단을 호명하고 주보에 게재하는 것은 헌금을 강요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일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하나님께 더 많이 투자하여 더 많은 복을 받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와 동일한 질문이다. 십일조와 부모 공경이 같은 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가지고 교회 내부 경비를 최소화하고 구제와 전도를 위해 사용해야 마땅함에도, 십일조에 더하여 온갖 헌금종류를 만들어 과도하게 헌금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일 뿐 아니라 선량한 신자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과도한 헌금 제도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형제의 우의를 다져야 하며, 이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신자의 의무를 다 할 수 없게 만든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모님께 드리는 대신에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헌금이 유행하였던 모양인데 주님께서는 이 ‘고르반’ 행위를 몹시 책망하셨다(막7:11). 하나님께 헌금한 증표를 제시하여 자녀의무를 태만히 한 죄를 면죄(免罪) 받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십일조의 법과 부모섬김의 법이 같은 뜻의 맥(脈)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니 교회들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여 부모 섬김의 도리를 다하게 함이 어떨까? “효자 효녀 여러분! 우리 교회는 부모에게 도리를 다하는 사람에게 교회 봉사하는 것을 허락할 것이며 부모에게 드리는 것만큼만 헌금을 받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대부분의 교회가 면죄부와 같은 기타헌금이 모두 사라지고 십일조가 제대로 된다면 재정이 더욱 넘치리라 믿는다
(말3:10)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막7:10-13)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 인정받으려 설명하지 말라
우리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리며 함께하여 주리며 한가지 한가지 준비된 과정 속에서 주님께서 계획하신대로 한가지 한가지를 이루어 가고 있나니 마음으로 근심하지 말며 염려하지 말며 끝까지 믿고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라.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은 일점일획도 변개함이 없이 모든 일을 이루어 가고 있거늘 무엇을 염려하며 근심하느냐? 끝까지 주님의 뜻을, 주님의 빛을 발하라! 주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이 땅에 대한민국 속에, 세계 속에서 우뚝 선 한국으로 세워 놓을 때가 오나니 그때를 준비하며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어떠한 비난도 어떠한 비판도 어떠한 잘못된 일들이 반드시 우리에게 접근해 온다 할지라도 다 물리치고 = 다 감수하며 = 감당하라! = 어떠한 생각과 어떠한 말로도 어느 누구도 이해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그러한 부분들이 있나니 때가 이르매 = 이해할 날이 오나니 그때를 = =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기다리라! = 인정받으려 하지 말며 설명하려 하지 말라!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더 힘들고 어렵고 오해만 = 되어질 뿐이라.
※ 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역, 세계에 우뚝 선 으뜸의 나라로 세워가는 일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법을 지키지 않는다’ 하는 비난을 들었을 때. ‘설명하면 할수록 더 힘들고 어렵고 오해만 되어질 뿐이니 설명하지 말라’ 하시다.
- 이 교회는 버리운 자, 오갈 데 없는 자들을 무작정 먹이고 입히라
분명히 명령하여 세우신 귀한 교회이거늘 어떤 것도 마음에 부담을 갖지 말며 이 교회에 향하신 뜻이 있고 귀한 목자에게 해야 될 일이 있기에 특별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기에 그 제단을 세워 놓았나니 마음껏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동참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되라!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행하라! 지금의 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딱 한 가지 있느니라! 하나님이 이 교회에 향하신 비젼은... 참으로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진정 우리가 교회의 참 목적을 바로 알고 한 교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불쌍한 영혼들, 버려진 영혼들, 병든 영혼들, 오갈 데 없는 영혼들 이 마지막 때에 진정 해야 될 본분을 감당하는 교회, 올바른 정상인 신자들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버리운 자들, 오갈 데 없는 자들을 무작정 먹이며 입히며 관리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라! 하나님이 부탁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진정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들을 보내서 그 일을 감당했듯이 지금에 목회자들은 그런 일을, 교회들은 그런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얼마나 있으며... 감당해야할 자들이 쉽고 편한 (것만 추구하며) ... 그래서 목회자가 살아있고 그러한 사명이 불타있으면 같은 성도들이 그곳에 모여서 사명이 불타는 자들을 보내 주리며 믿음으로 감당하며 그 은혜에 감당하는 목회자가 될 때 놀랍도록 그 제단을 축복하리며 역사하리라!
※ 위 묵시의 해설 - 이날에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신 내용은 다수의 존경받는 선량한 목자에 대하여 오욕을 끼쳐드릴까 심히 염려되었으나, 하나님의 종이기에 본래의 책망하신 내용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책망하심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고 더 크게 쓰시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