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받은날 : | 2017-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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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 05:30 |
장 소 : | 대전 유성구 덕명동 191-6 |
음 성 : | 음성화일을 준비중입니다. |
2017.11.16 05:30 덕명동 미가
♬ 내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방언 찬양)
주여 ...지금까지 도와주었고 지금까지 구원해주었고, 나의 딸이, 내 자신이 참으로 미쳤나이다... *‘저 여인이 미쳤나이다’(요8:4-5) 하였지만 여인이 미친 것이 아니라.. 각자 각자가 자기의, 자기의, 부분적으로 자기의 자신의, 자기가 하지 못한 부분에 제일 집착하는 부분과 모자라는 부분에 또 내가 이루고자 하는 부분에 미친 여인들이, 각자 각자의 자신이 아니겠나이까. 누구에게 우리가 돌을 던질 수 있겠나이까(요8:7).
*각자 각자에게 돌을 던지어 자기의 자신을 바라볼 때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신,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요8:7). 자신을 비추어 거울을 보아라! 그리하면 자기의 자신이 무엇이 보일지 다시 한 번 바라보아라! 내 자신을 비추어 무엇이 제일 큰 약점인지 바라보아라! (방언)
♬ 내 주의 보혈은 ~ (방언 찬양)
*누구에게 돌을 던지지 말며 네 자신을 다시 정확히 바라보아 네 눈에 있는 티를 뽑아내며 (마7:5) 아무리 나에게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했고 네게 모든 것을 다 승리케 했다고 하였지만, 왜 그러한 상황이 되어졌으며 왜 그러한 일들이 되어졌는지를 먼저 바라볼 때에,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내 자신을 먼저 바라보면 누가 누구에게 송사할 수 있으랴. 먼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꼭 필요한 일들은 송사(訟事)할 수 있지만 네 자신을 먼저 바라보고 네게 가진 것을 먼저 바라보면 어찌 상대방을 용서(容恕)할 수 없으랴. 먼저 용서 없는 싸움은 있을 수 없으며 먼저 네 자신을 바라보아 용서를 구한다면 모든 문제 하나하나가 풀어질 수 있는데 우리의 자신의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며 내가 상대방이 한 것을 생각하며 ‘억울하다 억울하다’ 생각할 때마다 내 자신은 어찌 했는지를 바라볼 때에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으랴. 우리가 송사에 걸릴 때마다 우리는 무엇이 내가 약점(弱點)이 있었고 무엇이 내가 잘못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할 때에 어찌 네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상대방의 피차의 그 억울함을 보지 못하며 나만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에 그 상대방의 그 억울함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우리는 가진 자가 되어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억울하다 억울하다’ 하며 송사하며 송사하며 송사(訟事)하고 있지만 우리의 그 모든 내 자신의 물질의 막힌 것도 있지만 내 자신의 자존심(自尊心)을 뺏긴 것도 있으며 우리는 물질만이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마저 빼앗기고 빼앗겼다면 그것은 물질을 빼앗긴 것보다 더 큰 배신감이며 송사를 우리가 원할 때에 상대방의 무엇을 빼앗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때에 우리는 그 모든 답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내 자신부터 남을 먼저 보지 못하며 내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억울하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하며 내 앞에 가리워진 욕심은 보지 못하고 남의 용서하지 못함만 보며 ‘잘못 되어졌다 잘못되었다’ 하며 끝까지 싸움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내가 먼저 그 싸움을 놓지 않으면 끝까지 그 다음에 문제가 또 다시 풀어지고 풀어지고 풀어질 것 같지만 우리는 어느 선에서는 그칠 수 있는 싸움도 우리가 마지막까지 ‘억울하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하며 끝까지 끝까지 더 내가 해보겠다 해보겠다 하면 그 모든 것이 더 꼬이고 꼬이고 꼬여서 마지막에 올무에 걸릴 수 있으며 어느 선(線)에서 그 싸움을 놓을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지혜로운 자이며, 이긴 자가 아니고 승리한 자가 아니겠는가. 승리(勝利)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으랴. 먼저는 용서할 수 있어야 되며(마6:12) 먼저는 사랑할 수 있어야 되며 먼저는 껴안을 수 있어야 되며 내 자신을 먼저 바라보며 상대방의 그 마음을,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마지막에 참으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진 빼앗긴 자를 더 더 많은 것을 내게 내게 가지며 마지막에 완벽하게 완벽하게 완벽(完璧)하게 모든 것을 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면 다음 다음은 인간과 세상의 도리와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과 또 사람의 도리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 다 모든 것을 이기었지만 더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완벽하게 완벽(完璧)하게 싸워서 재판(裁判)에서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 때에는 욕심이 과하고 욕심(欲心)이 지나치면 더 화(禍)를 불러올 수 있으며 모든 것을 너그럽게 내가 진 것 같고 내가 잃은 것 같고 내가 손해본 것 같지만 거기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승리(勝利)자이며 성공(成功)자인 것을 먼저 생각하며 더 이상의 싸움을 요구하지 말라. 더 이상의 송사(訟事)를 요구하지 말라. 더 이상의 재판(裁判)을 요구하지 말라. 끝까지 끝까지 더 크게 크게 크게 바라본다면 이제는 재판을 멈추며 송사를 멈추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한 가지 한 가지를, 한 가지 한 가지 이미 다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승리했고 승소(勝訴)했으면 그 다음 그 다음은 이제는 스스로 풀어지기를 믿으며, 이미 되어진 모든 사건을 더 사건과 사건으로 몰고가지 말라. 내가 지금까지 도와주었고 지금까지 역사하였고 앞으로 되어지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이제는 다 .. 다 네 것으로 만들었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나의 딸아! 지금까지 모든 것을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었듯이 주위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모든 승리와 성공의 길로 이끌어 가는 그 길로 놓았지만 참으로 모든 영혼들을 네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며 그 상대방(相對方)을 바라보며 용서(容恕)해주며 불쌍히 여기며 이제는 가진 자로서, 상대방을 용서해줄 수 있으며 지금까지 되어진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이제는 더 겸손(謙遜)하고 낮아진 자세로 세상에 나아가는 자세를 가지라. 그럴 때에 모든 역사가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이제는 지금서부터 시작(始作)이라 생각하며 온유하며 겸손(謙遜)하며 교만하지 말며 자만하지 말며 끝까지 나아가는 나 자신 자신들이 되어지기를 원하노라. 서로가 서로가 자기가 욕심이 지나치면 자기의 가진 것도 빼앗길 수 있느니라. 우리는 자기의 분량(分量)이 있으며 자기의 그릇, 자기의 분량이 있으며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용도가 있는 것을 알며, 남의 것을 다 네 것이라고 탐내지 말며 자기의 분량대로 모든 것을 하나 하나 협력하고 협력하여 서로가 서로를 잘하는 것을 피차 서로 서로 나누어 주며 서로 서로 협력(協力)하여 모든 한 구성(構成)을 이루며 한 단체(團體)를 이루며 자기가 잘하는 부분 부분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우리는 단체가 되기를 원하며, 네게 가진 모든 것을 한 가지 한 가지 자기의 가진 재능(才能)과 능력을 함께 함께 나누어 피차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잘하는 준비된 그릇이 있으며 달란트가 있으며 지체가 있는 것을 먼저 알며, *우리는 한 지체 지체(肢體)가 모아져 톱니바퀴를 끼듯 하나 하나가 끼어져 모든 구성을 이루며 모든 단체(團體)를 이루며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갈 수 있느니라(고전12:25). 경영(經營)을 잘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법(法)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있고, 계획(計劃)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모든 계획을 잘하여 그 모든 물권을 창출시키는 자가 있고 또 모든 사람을 잘 다루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하여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을 구성원(構成員)이 되어져 하나하나를 이루어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이제 내가 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생각하면 그것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땅 위에 다 물질을 가진 자만이 제일 큰 성공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온유(溫柔)와 겸손(謙遜)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구분하여 나중에 그 일을 잘해내는 것이 자기에게 제일 가진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제일 큰 가진 자가 아니겠는가. 이 땅 위에 이 세계와 한국과 자기의 가정과 자기의 자신이 모든 기업들이, 하나하나가 다 구성이 되어져 그 곳 안에는 청소(淸掃)하는 자가 있는 자가 있는 있는가 하면 또 밥을 하는 자가 있고 또 사무(事務)를 보는 자도 있고 지식(知識)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지식이 없어서 말로만 하는 자가 있으며 또 경영(經營)을 잘하여 그 물질을 가지고 모든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책임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대표자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그 살아가야될 목적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일들이 있는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면은 그것은 할 수도 없지만 모든 것이 망(亡)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일은 잘 되어질 수도 없나니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만 서로 서로 합하고 합하고 협력하여 그 단체와 그 일들을 이루어 가는 그러한 단체와 그러한 구성원들이 되기를 원하여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마다 사람을 붙이고 붙이고 협력과 협력과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이뤄가기 위하여 짝과 짝을 맞추어 놓았거늘 어찌 그 모든 것을 다 내 것이라 말할 수 있으랴. .. 주여... 할렐루야. 모든 과정을 다 풀어 놓았느니라. 이미 다 승리하였느니라. 이미 계획했던 송사했던 그 재판(裁判)이 이제는 다 다-아 지금의 걸려있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걸려진 모든 재판은 승리케 하리라. 하지만 승리케 하는 그 위에는 내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며 *나의 부분(部分)만을 가질 수 있는 자세.. 각자의 내게 맡긴 일이 있으며 서로 서로에게 지체 지체가 움직여 그 일을 구성을 이루며 그 단체를 이루어 그 모든 부분을 맡기듯이 자기가 제일 잘 하는 그 부분을 하나하나 이끌어 갈 수 있는 단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러한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며 그러한 기업이 되기를 원하노라(롬12:4). 먼저 내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어디까지 잘 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바라보아 더 큰 욕심을 부리면 화가 불러올까 심히 두렵구나.
사랑하고 사랑하는 나의 딸아 이미 네게는 백지수표를 들려준 그 안에 모든 문제 한 가지 한 가지를 해결해 놓았지만 혹시나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며 더 이상의 돈 돈 돈 돈 하지 말며 내가 이미 불쌍이 여겨 구원해주어 모든 일을 이미 해결해놓았거늘 네 어떠한 일에도 계산법을 따지지 말며 저절로 주어진 자에게 저절로 그 몫이 되어진 자에게 이미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가졌으며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후대 후대 후대(後代)까지 그러한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쓸 수 있는 물질(物質)을 준비해놓아 하나님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위해서.. 네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기 위한 모든 문제 문제를 풀어 주었거늘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염려하느냐. 돈돈돈 하지 말며 네게 맡겨진 그 일을 잘 감당되어져 ‘모든 것을 풀어갈 수 있는 열쇠의 키는 누구에게 있을까’하는 열쇠의 키가 네게 들려주었거늘 무엇을 염려하느냐. 끝까지 자기의 맡겨진 그 자리에서 그 모든 일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는 나의 딸이 되기를 원하노라. *각자 각자에게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의 키를 각자 각자에게 맡겨주어 자기의 분량(分量)대로 자기의 지체(肢體)대로 톱니바퀴가 하나하나 끼어져 한 구성을 이루며 한 단체를 이루며 한 기업을 이루며(고전12:12) 그 기업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표 대표(代表)들을 세워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 일을 감당케 하였고 이제는 각자 각자에게 잘할 수 있는 틀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단체가 되기를 원하노라. 단체에 맞추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 위에, 기업과 기업과 기업에 그 이름을 주어 그 역사를 이루어 가기 위하여 한 개인 개인의 한 역사 속에 끼워 넣고 그 톱니바퀴가 끼 듯 그 안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끼워져 이 나라를 이루며 이 세계를 이루며 이 기업을 이루며 단체 단체를 이루며 하나님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 위하여 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하나가 되어져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그 일이 무엇인 줄 아느냐. 이 땅 위에 믿는 자들도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가 되어져 일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나의 딸과 나의 아들을 대표자로 세워놓아 그 일을 감당케 하며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였지만 그 그릇이 되며 주변의 일꾼이 되며 대표가 될 수 있어 그 일을 하게 하였거늘 어찌 그 일이 ..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어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 참으로 기독교(基督敎)와 불교(佛敎)가 합하여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느냐 하였지만 이미 그 일을 이루어 승리의 깃발을 들게 하였느니라. 그 마음이 합하여 서로가 이해(理解)하여 주었기에 오늘의 이 역사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믿음 안에서 믿어줄 때에 큰 역사를 이루지만 서로가 서로가 자기의 것을 다 가지려 하면 그것은 참으로 더 욕심이 과하면 참으로 있는 것도 참으로 빼앗길 수 있느니라. 이제는 각자 각자 자기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 내 것이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피차 서로가 서로가 협력이 되어져 이 땅 위에 구성(構成)을 이루어 그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때에 모든 것을 이루어 갈 수 있느니라. ‘내가 가졌기에 내가 이겼기에 나만이 할 수 있어’ 하는 자세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가 합하여 그 일을 이루어 냈듯이 이제는 더 협력(協力)하고 협력하고 협력하고 협력하며, 겸손(謙遜)하고 겸손하고 겸손하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가 하나가 하나를 이루어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 부분을, 서로가 서로가 협력하여 하나의 구성을 이루어 이 땅에 참으로 세계를 품에 안고 한국을 품에 안고 기업, 이 땅에 가정을, 모든 자기의 가진 자기의 놓은 그 단체를 품에 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참으로 그 역사를 이루었듯 자기의 가진 그 능력을 발휘하여 참으로 지금의 이루지 못한 일들을 참으로 세상에 내어 놓아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 이치(理致)에서 세상의 이치를’, ‘하나님의 관점(觀點)에서 세상의 관점’이라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하나님의 이치와 세상의 이치가 참으로 지금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그 오묘한 그 비밀(秘密)을, 나의 딸과 나의 아들은, 참으로 그 힘을 합치고 합치고 합하여 기독교(基督敎)와 불교(佛敎)가 합하여 무엇을 이루었는 줄 아느냐. 하나가 하나가 되어져 그 일을 이룬다는 것을 네게 보이고 그 아들에게 보여 이 땅 위의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며 이제는 세계를 품에 안고 한국을 또 내 나라를 품에 안고 지금 가진 단체 단체를 품에 안고 걸어갈 수 있는 역사가 무엇인줄을 이제는 다시 한 번 그 다음 단계로 펼쳐갈 수 있는 역사를.. 이제는 과정과 과정과 과정(過程)을 거치고 송사와 송사와 송사(訟事)를 거쳐 이제는 뜻을 이루었지만 더 이상의 더 큰 송사(訟事)를 벌이지 말라. 이미 되어진 그 송사 하나 하나를 이미 다 해결되었다 하며 모든 것을 풀렸다고 했던 그 역사가 .. 이미 역사해주었던 더 큰 역사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모든 일을 벌리지 말며..
아.. 하나님... 주여 아버지 하나님...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여 더 큰 일을 참으로 모든 것을 승리(勝利)했다 하며 자만(自慢)하여 더 큰 일을 벌려서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야기하여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 주님 앞에 온전히 들려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과정 과정을 잘 허락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의 키는 누구에게 있을까’ 하여 그 과정 과정을 ‘각자 각자에게 주어’ 모든 것을 풀었지만 *더 큰 것을 이루기 위하여 용서(容恕)하지 못하며 더 큰 것을 가지려 하면 참으로 그것을 그르칠 수 있다(마6:15)는 참으로 무서운 경고(警告)의 메시지를 주었나이다. 하나님 더 이상의 송사(訟事)에 휘말리지 아니하고 재판(裁判)에 휘말리지 아니하고 지금의 있는 것을 하나 하나 다 승리를 풀었다고 이미 약속해 주었지만 우리는 더 크게 내가 더 이겨야 되고 더 억울하고 억울하고 더 하고 더 할 때에 더 큰 올무에 걸릴까 심히 두렵다고 하였사오니 모든 것을 우리가 *더 큰 내 자신의 티를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 (마7:5)가 되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것도 자기의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 위 묵시의 해설 - 우리 현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마태복음 산상수훈을 알기 쉽게 해설해 주신 내용이다.
김원장의 새벽 꿈에, 사람들이 어떤 여자를 돌로 치며 '저 여자가 미쳤다'고 외치는 무서운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찬송과 방언으로 이어졌다.
기독교인이면 용서와 화해가 더 용이할 것 같은데 항간에는 '송사 상대방이 기독교인이면 화해되기를 아예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은 자기 의가 강해서 타협이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기독교인들만 살지 않고 여러 종교의 신조를 믿고 사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여러 다른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는 행위가 범죄로 지적되는 시대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먼저 다른 종교를 포용하여 모범적 시민이 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갈등을 유발하는 반시대적 종교로 오인될 것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종교개혁을 외쳐왔고 미가사역자들도 많은 메시지를 전했으나 좀처럼 실체가 잡히지 않아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으나 오늘의 메시지가 제2종교개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한글성경은 성경 원문대로 '오직'을 빼고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정의 사랑 겸손 등 균형적 믿음에서 벗어나 '오직 믿음' 신앙으로 극단화되었기에 오늘날 한국개신교는 희생과 행위가 배제된채 관념적 사변적 궤변으로 흘러 죽은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루터 당시에는 '오직 믿음' 신학이 카톨릭교회의 행위강요 횡포로부터 해방시키는 특효약이 되었으나 그것만을 장기간 복용한 탓에 오늘날에 부작용이 쌓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 '공부 잘 하면 성공한다'는 말로 족함에도 '오직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른 가치를 부정하고 공부 지상주의로 왜곡을 불러일으킨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뿌리로 삼은 롬1:17 말씀에서도 합2:4에도 영문 성경에는 'only'가 없다. 왜 유독 한글 성경에만 '오직'이 있는가?
저명한 신학자에게 질의하니 과거 독일어 루터성경에 'only'가 있었으나 히브리성경을 포함한 다른 성경에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